뮤지컬계 최강의 코믹 듀오가 떴다. 최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4월 19일까지)에 출연하는 뮤지컬 배우 김성기(44)와 정상훈(33)이다. 각자의 무대에서 코믹 연기로 명성을 얻은 두 사람은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한 무대에 섰다.
김성기는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 '마이 페어 레이디'의 술주정꾼, '미녀는 괴로워'의 변태 의사 등으로, 정상훈은 '아이 러브 유'의 남자, '이블 데드'의 스콧, '김종욱 찾기'의 멀티맨 등으로 관객의 배꼽을 뺐다.
'기발한 자살여행'은 동명의 핀란드 원작 소설을 각색한 창작 뮤지컬이다. 2018년 통일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자살을 결심한 11명이 함께 버스를 타고 자살할 장소를 찾아 북한까지 횡단하는 과정을 그린다.
자살이란 무거운 주제를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블랙 코미디다. 김성기는 부도가 나 자살하려는 사장 역을, 정상훈은 천재지만 자폐증이 있는 우상준과 자살단을 뒤쫓는 국정원 직원 지정석을 1인 2역 한다.
정상훈의 경우 자살단의 버스를 놓쳐 혼자서 따라오는 우상준 역이기 때문에 항상 무대에 혼자 선다.
이전까지 같이 연기한 적이 없지만 두 사람은 무척 친했다. 정상훈은 "2006년 형님이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를 공연하는 걸 보고 사석에서 만날 기회를 가졌다. 내가 형님을 좋아해 따라다녔다"면서 "형님은 열 소년 같은 정신 세계를 가진 순수한 분이다. 작품을 같이 하고 싶었는데 숙원을 풀었다"고 말했다.
코믹 연기의 색깔은 두 사람이 확연히 다르다. 김성기는 탁 풀어진 목소리와 몸동작으로 구사하는 애드리브가, 정상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순발력과 코믹한 얼굴 표정 연기가 일품이다. 그러기에 웃음의 좌우 엔진을 보유한 '기발한 자살여행'은 유쾌하다.
두 사람은 방황 끝에 코믹 연기로 진가를 인정받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성악가 출신으로 서울예술단에서 뮤지컬 배우로 빛을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김성기는 2000년 무렵 배우 생활을 접고 1년 반 동안 경기도 이천에서 도자기를 구우며 살았다.
배우 생활을 그만두기 얼마 전 독일의 한 연출가에게 지도를 받으며 몸 연기에 눈을 뜬 게 복귀의 계기가 됐다.
그는 "그 연출가가 내게 박씨 연기를 시켰다. 박씨가 땅으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옷을 하나씩 벗고 팬티만 걸쳤다"면서 "그 연출가는 또 다시 땅에 아스팔트가 덮여 있다는 가정을 했다. 무대 구석에서 다른 구석까지 기어가다 고개를 '뾱' 내밀었다. 연출자와 동료들이 내게 찰리 채플린 같다고 칭찬해 주었다"고 밝혔다.
평소에도 무척 유쾌한 정상훈은 2001년 뮤지컬 '가스펠'을 통해 뮤지컬 배우로 정착하기 전까지 영화·드라마·개그·VJ 등까지 안 해본 게 없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계속 채플린을 연구한다. 웃음에는 설득의 미학이 들어 있다. 재미있고, 그 안에 슬픔이 들어 있어야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전했다.
"나름대로 매 작품마다 연기 변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두 사람의 목표는 하나다. '맨 오브 라만차'가 다시 공연된다면 김성기가 돈키호테를, 정상훈이 산초 역을 하는 것이다. 뮤지컬 팬들에게 이보다 더 신나는 캐스팅이 있을까.
장상용 기자 [enisei@joongang.co.kr] 사진=김진경 기자 [jin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