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두려운 것은 얼어 죽고, 자빠져 죽고, 먹잇감이 되어 죽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지 못하고 이대로 죽는 것이오.'(홍랑 편)
조선 중기의 기생 홍랑은 요즘의 어떤 여인보다 뜨겁고 적극적인 사랑을 했다. 홍랑은 함경도 변방 경성에 북도평사라는 벼슬로 지내고 있던 연인 최경창을 찾아 천리 길을 걸어갔다. 홍랑이 덜덜 떨면서 나타났을 때 최경창은 얼마나 놀랐을까.
교과서에 등장하는 시조 '묏버들'의 주인공 홍랑의 시는 서울로 돌아가는 최경창의 뒷모습을 보며 홍랑이 쓴 작품이다.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연인의 운명은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처연하다.
기자 출신 저자 이상국씨는 일곱 명의 한시 저자와 그 시들을 특유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한다. 그는 홍랑을 '이지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으나 우수에 찬 눈을 가졌으며, 다문 입술엔 특유의 강단이 느껴지는 그런 여자'라고 상상한다.
기생 매창은 허균과 저승 약혼을 했다. "우리가 이승에서 함께 잠들지 않은 것은 무덤에서 영원히 함께 잠들기 위해서 아껴둔 것이 아니더이까?"라는 서신을 허균에게 보낸 주인공이다. 저자는 허균이 1610년 형조참의가 된 시점을 가정하고 허균과 가상 인터뷰를 통해 매창의 면모를 살핀다.
이 책의 후기는 점입가경이다. 시의 주인공인 일곱 기생과 그 연인들이 모두 2009년 인사동에 모인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저자의 재치가 미소를 짓게 한다.
장상용 기자 [enise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