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유채꽃을 판 아버지 돈 1만6000원을 슬쩍한 17살 박종팔이 상경해 정착한 곳이 서울 흑석동이었다.
사촌형 집에서 신세를 지던 그는 아버지가 부쳐주는 쌀을 찾으러 영등포역에 자주 갔는데 노량진역 근처에 있던 동아체육관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중학교 때부터 레슬링·씨름 등을 조금씩 해봤고 학교도 심드렁했던 그의 눈이 번쩍 띄었다.
77년 신인왕전에서 우승한 후 탄탄대로를 달렸다. 중량급이면서도 유연한 허리를 무기로 승승장구했다. IBF 슈퍼미들급,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에 등극하며 '링 위의 호랑이'로 이름을 날렸다. 한국 프로복싱의 전성기였다.
그에게 일생의 천적이 있다. 바로 이효필이다. 무안과 해남으로 고향이 지척이고 동갑내기 친구이지만 그 친구에게만 3패를 당했다. 프로 입문 전 77년 두 차례 대회 결승에서 2패 뒤 2003년 장충체육관에서 '이벤트'로 열린 이종격투기 경기에서 또다시 패배를 기록한 것. 경기 전 약속한 규정이 지켜지지 않은 탓도 있었다. "이젠 지나간 일 아닙니까. 요즘도 자주 보는 친구이지만 그 때 일을 떠올리면 조금 어색해 지기는 합니다."
박종팔은 "지금 생각해도 권투는 딱 적성이었습니다. 뭔 일을 오래 못하는 성격인데 권투는 날짜가 잡히고 반짝 하면 되잖아요. 다시 태어나도 권투를 할 것 같습니다"라며 회한에 젖어들었다.
박수성 기자
▷
[박수성 How are you] ‘미들급 강자’ 박종팔 “인생 3라운드 역전 노린다”▷
[박수성 How are you] 박종팔, 이효필에 3패 ‘일생의 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