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는 (주)진로의 재상장을 확정했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로 부도가 난 뒤 2003년 상장 폐지됐던 진로가 6년만에 부활하게 된 것이다.
진로는 이를 제 2창업의 발판으로 삼아 세계적인 주류 기업으로 재도약한다는 원대한 포부를 세우고 있다. 한 때 국민들의 아픔을 달래주기도 하고, 기쁨을 함께 나누기도 하는 등 전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국민소주' 진로. 새로운 도약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진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외국자본에 한번도 팔린적 없는 기업
최근들어 잠잠해졌지만 상반기까지만 해도 '진로 주인'에 대한 루머가 술자리에서 안줏거리로 자주 오르내렸다. 진로가 외국자본에 넘어갔다는 게 그것. '아사히 맥주가 주인이라는데…''아냐, 기린이라고 들었는데?''미국 기업이라던데…'등등. '참이슬'이나 '진로 제이' 한잔을 마시면서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얘기다.
소문은 소문을 낳고, 마치 진실인냥 주당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진로는 올 상반기 때 이를 잠재우기 위해서 진로의 지분율이 인쇄된 라벨을 붙인 참이슬을 내놓기까지 했다.
하지만 전혀 사실무근. 진로는 1924년 10월3일 창업한 이래, 지금까지 단한번도 외국자본에 넘어간 적이 없다. 보통 외국자본에 넘어갔다는 의미는 회사의 최대 주주가 외국 자본이고 그래서 경영권을 외국인이 행사하는 것을 말하는데 진로는 그런 적이 전무하다. 창사 후 2002년까지 장씨집안에서 경영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IMF시절 부도를 맞은 후 2003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5년에는 하이트 맥주 컨소시엄에 매각됐다. 하이트 맥주는 잘 알다시피 조선 맥주이고, 크라운 맥주이다. 현재 최대주주는 하이트 홀딩스(주)로 절반이 훨씬 넘는 55.40%의 지분을 갖고 있다. 다음은 한국교직원 공제회(18.40%), 군인공제회(13.15%) 순이다.
이에 대해 진로 마케팅 부서의 한 관계자는 "왜 그런 황당한 루머가 생긴 것인지는 추측할 뿐 정확히 알 수는 없다"며 "그런 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IMF 때문이 아닐까 싶다. IMF 구제금융 시절, 부도난 국내 기업이 외국계 기업이나 자금에 매각되는 사례가 많았는데 진로도 그때 부도가 났기 때문인 것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75년간 '술' 한우물만 판 기업
진로는 1924년 창업이후 지금까지 '술'만 생산하면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주류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 때 건설등에 잠깐 한 눈을 판적이 있지만 지금은 오직 술만 생산하는 기업이다. 참이슬, 진로 제이 등 소주 뿐 아니라 복분자·매화수·포도주 등 다양한 주류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진로는 1970년 국내 소주시장 1위에 오른 이후 39년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1998년 일본에서는 단일품목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른 이후 가장 인기 있는 상품으로 자리잡고 있을 뿐 아니라, 2001년 이후 지금까지 증류주 부문 판매량 8년 연속 세계 1위를 자랑하고 있다. 증류주는 맥주·와인 등의 저도주와 더불어 세계 3대 주류중 하나로, 위스키를 비롯해 브랜디·럼·진·보드카·소주 등을 포함한다.
진로 마크 첫 주인은 두꺼비 아닌 원숭이
진로하면 떠오르는 동물은? 모두 두꺼비라고 답할 것이다.
맞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소주 한병 더"라는 주문 대신 "여기 두꺼비 한마리 더"라고 했을 정도로 '두꺼비가 진로였고, 진로는 두꺼비'였다. 그러나 초창기 진로의 마크는 두꺼비가 아니었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는데, 바로 원숭이였다.
진로의 전신은 진천양조상회이다. 1924년 10월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창립했는데 평안도쪽에서는 원숭이가 복을 상징하는 영특한 동물로 여겨 선택한 것이란다.
진로의 심볼이 원숭이에서 두꺼비로 바뀐 건 언제일까. 한국전쟁때 남으로 내려온 진로는 부산에서 사업을 이어갔다. 1951년 부산에서 '금련', 52년에는 '낙동강'을 생산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1954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으로 이전한 진로는 1955년 3월 처음으로 두꺼비를 마크로 한 진로소주를 출시했다.
그 당시 두꺼비 역시 여러 차례 변신을 거듭한 끝에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왜 심볼을 바꾸었을까.
평안도지방과 달리 남한에서는 원숭이를 간사하고 교활한 동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두꺼비는 강한 번식력과 장수의 상징이어서 사업이 번창하기를 바란 경영진이 선택해 진로의 상징이 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