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헤어졌지만 각자 다른 자리에서 잘 나가는 두 남자. 2009~2010 프로농구 화두는 '전창진'과 '강동희'다.
전창진(46) 부산 KT 감독과 강동희(43) 원주 동부 감독은 시즌 초반 상위권에서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두 감독 모두 '신임'이다. 전 감독은 1999년부터 10년간 지도자로 몸 담았던 동부를 떠나 올 봄 KT로 옮겼다. 그는 강팀 동부를 두고 "나를 새롭게 시험해 보고 싶었다"면서 KT 지휘봉을 잡았다. 전 감독이 떠나면서 공석이 된 동부 사령탑은 강 감독이 맡았다. 강 감독은 2005년 동부 코치로 부임하면서 전 감독과 처음 만났고, 올해 전 감독과 이별하면서 생애 첫 감독직을 맡게 됐다.
올해 신임 감독이 됐다는 것, '헤비급'의 넉넉한 몸매라는 것 외에 두 사람의 공통 분모를 찾기는 쉽지 않다. 학교 선후배도 아니고, 실업 농구 시절 전 감독은 삼성, 강 감독은 기아에 있었다. 프로 이후에도 강 감독이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한 팀에 몸 담았던 적이 없다. 전 감독은 서울에서 자랐고, 강 감독은 인천 출신이라 지역 연고도 다르다. 농구계의 유명한 애주가 강 감독과 달리 전 감독은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다.
이처럼 공통점이 없는 두 사람은 2005년 처음 한팀에서 만났다. 당시 LG에서 코치직을 맡고 있던 강 감독은 전 감독의 러브콜에 곧바로 TG(현 동부)로 자리를 옮겼다. 전 감독은 "당시 TG는 월급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해외 연수 등 좋은 조건이 보장된 LG 코치직을 버리고 내 얼굴 하나를 보고 TG로 옮긴 강동희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의리의 사나이"라고 강조한다.
전 감독은 올해 KT로 자리를 옮기면서도 동부에서 함께 일했던 코치들과 함께 이적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중 강 감독은 '조건부'였다. 강 감독이 동부 감독이 된다면 'OK'지만, 만일 그렇지 않다면 강 감독을 코치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10년간 피땀을 쏟은 동부를 누군가에게 맡긴다면 유일하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강동희 뿐"이라는 게 전 감독의 말이었다. 강 감독은 반대였다. "아직 전 감독님에게 배울 게 많다"며 코치로 함께 하길 원했지만 결국 동부에 남아 감독을 맡게 됐다.
이번 시즌 두 감독이 만들어낸 각팀의 팀컬러는 프로농구 보는 재미를 더 하고 있다.
▶전창진 감독 '꼴찌를 정상으로'
KT는 지난 시즌 12승42패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포인트가드 신기성과 쟁쟁한 슈터들이 있었지만 그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전 감독이 팀을 맡자마자 KT는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신했다. 끈끈해진 팀 컬러에 군에서 제대한 조성민·김도수가 가세해 힘을 보탰고,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는 제스퍼 존슨의 득점력도 천군만마다. 하지만 KT 돌풍의 핵심은 역시 전 감독이다. 그는 단 한 시즌 만에 KT를 '전창진의 팀'으로 바꿔 놓았다.
전 감독은 올해 5월 KT에 부임하자마자 취임식에 선수들을 불렀다. 그는 이 자리에서부터 꼼꼼하게 팀 분위기를 파악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선수들에게 "훈련 외 시간의 사생활은 100% 보장해 준다. 하지만 훈련에 최선을 다 하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이어진 태백 전지훈련.
전 감독은 선수들 입에서 단내가 나올 정도로 혹독한 체력 훈련을 시켰다. 선수들의 체중이 쑥쑥 줄어드는 동안 전 감독은 포워드들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협력 플레이를 하도록 팀 훈련을 다져갔다. 전 감독은 "훈련 시간 막판에 선수들 다리가 풀릴 지경일 때 무빙 슛 연습을 더 시켰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KT는 고된 경기 스케줄을 받아 들어도, 연장 접전을 펼쳐도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경기를 하고 있다.
훈련 시간이 '지옥'으로 바뀌었다면 야간 휴식시간은 더 크게 바뀌었다. 전 감독은 밤 마다 선수들을 불러 모아 포커를 하거나 야식을 먹으면서 친해지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는 "선수들과 빨리 친해지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훈련 시간에 눈물 쏙 빠지게 혼났던 선수들과 웃으면서 게임을 하는 와중에 점차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전창진의 KT'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기록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KT는 팀 순위에서 1위를 달리고 있을 뿐 아니라 득점·야투·어시스트·3점슛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정통 센터 없이도 두터운 포워드진의 로테이션을 기반으로 해서 가장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효율 농구'를 하고 있다. 욕심을 내며 경기를 망치는 선수가 없다. 그래서 전 감독의 카리스마가 더 돋보이지만, 막상 전 감독은 "자꾸 감독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와서 민망하다"고 말하고 있다.
▶강동희 감독 '무서운 초보 사령탑'
강 감독은 감독 데뷔전이자 시즌 개막전이던 지난 달 15일 KCC전에서 "너무 긴장된다"며 연신 땀을 흘렸다. 경기 전 라커에서는 초조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줄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하지만 개막전에서 보여준 동부의 경기 내용을 보면 '초보 감독'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빈틈 없이 탄탄했다. 동부는 지난 시즌 챔프전 우승팀 KCC를 맞아 상대 약점을 파고들면서도 KCC의 강점인 하승진과 전태풍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팬들의 이목이 집중됐던 개막전은 동부의 완승으로 끝났다. 전 감독은 이 경기를 지켜 보고 "동희가 정말 준비를 많이 했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강 감독은 선수들을 무섭게 다그치는 일이 드물다. 감독 첫 시즌에 겪고 있는 힘든 점이나 애로사항에 대해서도 솔직담백하게 털어 놓을 만큼 성격도 서글서글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색깔과 배짱이 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강 감독은 전 감독이 KT로 떠나면서 동부를 맡았고, 지휘봉을 잡자마자 동부의 색깔을 확 바꿔 버렸다.
전 감독은 지난 시즌까지 수비를 강조하면서 김주성과 호흡을 맞출 장신 외국인 센터를 선발하는 방식으로 동부를 꾸려왔다. 하지만 강 감독은 과감하게 높이를 버리고 스피드를 선택했다. 주전 외국인선수로 키 196.5㎝의 공격형 포워드 마퀸 챈들러를 선발했고, 가드 박지현을 영입하면서 동부를 빠른 팀으로 바꿨다. 강 감독은 "경기당 90점대 득점을 하는 공격 농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시즌 초반까지는 강 감독의 호언장담이 그대로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 동부는 확실한 센터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게리 윌킨슨 탓에 공격력이 만족할 만큼 나오지 않고 있다. 골밑이 약해지면서 김주성에게 걸린 과부하도 크다. 박지현·이광재·윤호영·김주성으로 이어지는 국내 주전 선수들의 라인업이 아직은 플레이에 기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동부의 주특기인 수비는 이번 시즌에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동부는 평균실점 77.1점으로 수비력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블록. 경기당 평균 4.36개로 1위다.
'파리채 블록'을 자랑하는 김주성과 윤호영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동부의 힘이다. 강 감독은 "전 감독님이 계실 때 쓰던 수비전술을 거의 바꿔서 새로운 수비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동부는 김주성을 지역방어 앞선에 활용하면서 이번 시즌 10개 팀 중 가장 탄탄한 수비력을 완성했다. '강동희의 동부'가 갖고 있는 가장 큰 힘이다.
◇전창진 KT 감독
생년월일ㅣ1963년 5월 20일 출생지ㅣ서울 신체조건ㅣ185cm/100kg 출신교ㅣ용산고-고려대 별명ㅣ치악산 호랑이 가족관계ㅣ부인 정인옥씨와 1남1녀 취미ㅣ골프,사람사귀기,영화감상 주량ㅣ소주 한 잔 경력ㅣ 1986~1987 삼성전자 선수 1998~1999 삼성 썬더스 코치 1999~2000 TG 삼보 코치 2002~2008 삼보 엑써스 감독 (2002~2003 챔피언결정전우승,2003~2004 정규시즌 우승,2004~2005·2007~2008 통합 우승) 2009~ KT 소닉붐 감독
수상ㅣ 1986 코리안리그 신인상 2004·2005·2008 프로농구 감독상
◇ 강동희 동부 감독
생년월일ㅣ1966년 12월 20일 출생지ㅣ인천 신체조건ㅣ18cm/92kg 출신교ㅣ송도고-중앙대 별명ㅣ깡통,코트의 마법사 가족관계ㅣ부인 이광선씨와 2남 취미ㅣ낚시,볼링 주량ㅣ소주 한 병 경력ㅣ 1993~2001 기아자동차 2002~2004 LG 세이커스 2004~2005 LG 세이커스 코치 2005~2009 동부 프로미 코치 2009~ 동부 프로미 감독 수상ㅣ 1997 프로농구 원년 최우수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