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로 깨지지 않는 ‘남자 주연’ 횟수 506회. 대한민국 원조 꽃미남 영화배우 신성일(72). 그가 주민등록까지 이전하며 새로 둥지를 튼 경북 영천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소띠인 그가 한 해의 마지막 날들을 가족과 보내기 위해서였다.
‘70대에 50대 몸매’로 알려진 그는 “좋은 옷을 입기 위해,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멋진 연애를 하기 위해” 산책·승마·아령 등 열심히 운동을 했다. 그리고 영화박물관 건립꿈도 무르익어가고 있다. 은발의 ‘베토벤 머리’를 하고 나타난 그를 서울 마포구 상수동 강변 오피스텔 근처에서 만났다.
▶ “영천 생활 행복, 나는 복 많은 노인네”
그는 현재 경북 영천에 전통한옥 ‘성일가’(星一家)를 지어 살고 있다. ‘정’이나 ‘재’는 건방져 보여 ‘가’라고 지었다. 2007년 9월에 영천에 내려가서 포도를 먹다가 ‘이쯤에 한옥 한 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현실화된 것. 배우 연수생 시절 서울 가회동 한옥에서 하숙했던 것이 한옥 짓기로 이어졌다.
그는 평생 두 채의 집을 직접 지었다. 하나는 1970년대 서울 한남동 순천향병원 근처 건평 60평짜리다. 또 다른 한 채는 2년 전 경북 영천시 괴연동 채약산 자락에 지은 건평 44평짜리 한옥 ‘성일가’다. 그는 성일가에서 풍산개 네 마리, 말 두 마리를 키운다. 그리고 같이 논다. 그는 “남자가 살면서 집 세 채는 지어야 한다”며 내년에 세 번째 집 ‘영화박물관’의 설계에 들어간다고 했다.
신성일의 기상 시간은 새벽 4시 30분. 기상 후 개들과 3시간 가량 산책을 한다. 오후에는 40분에서 1시간 남짓 말을 탄다. 저녁에도 개들과 산에 오른다. 그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오후 9시 30분. 그는 ‘성일가’에서의 하루하루에 대해 “영화 속에서나 생각했던 그런 일을 요즘 하고 있다. 나는 복 많은 노인네”라며 “혼자 맘껏 걸었으면 바랐는데 그것이 실현되었다. 몸무게도 영천에 내려와 5㎏가 빠졌다”고 말했다.
악수하며 잡아본 그의 손은 거칠했다. 실제 한 단체 출입증을 만드는데 지문이 안찍히더란다. “매일 혼자 집 주변의 담배꽁초나 개똥을 치운다. 비포장도로를 고집한 진입로엔 돌 치울 일도 많다”며 “이것 저것 치워야 하고, 닦아야 하고, 늘 혼자 마음이 바쁘다”고 했다.
그는 요즘 인근 은해사 주지 동강스님과 템플스테이와 산사 음악회를 기획 중이다. 그가 무엇보다 공을 들이는 것은 성일가 인근에 들어설 영화박물관이다. 그는 “아이들을 위한 독서실, 갤러리, 400석 규모의 공연장, 레스토랑 등이 들어가는 박물관을 설계 중이다. 내가 출연한 500편 중 100편을 편집해 재미있게 보여줄 계획”이라고 구상을 밝혔다.
▶원조 청춘스타 왜 파마했을까?
신성일은 한국 최초의 청춘스타다. 유덕화가 ‘천장지구’에서 보여줬던, 제임스 딘이 ‘이유없는 반항’으로 얻었던 것과 같은 것을 한국에서 이뤄낸 배우라는 평이 따라붙는다. 1960년대 초 ‘맨발의 청춘’을 통한 그의 출현은 한국에서 젊은 사람들의 사랑, 캠퍼스, 뒷골목 건달 이야기 등을 다룬 ‘청춘물’이라는 새 장르를 만들어냈다.
남자 주연 횟수 506회 기록 소유자는 그는 당대의 잘 나가는 무려 118명과 여배우와 공연했고, 전성기 때는 한 해 65편이나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TV가 본격화되기 이전 60~70년대를 주름잡았던 신성일은 한 배우의 이름이라기보다 완벽하게 근사한 남자를 지칭하는 보통 명사였다.
칠순이 된 그는 왜 파마를 했을까. 그는 국회의원 시절 연루된 수뢰 혐의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감옥에 있을 때 피아니스트 백건우-배우 윤정희 부부가 울면서 면회 왔다. 백건우가 ‘여기 있어야 할 분 아닌데’하며 ‘베토벤의 삶과 음악세계’라는 책을 주었다. ‘귀머거리라는 장애를 딛고 일어선 베토벤’처럼 고난을 이기고 당당하게 일어나라는 뜻이었다.”
그는 책을 읽다 유난히 머리가 헝클어진 베토벤의 사진을 발견했다. “말년에 작업하다 나와 머리가 흐트러진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때 출감하면 머리를 베토벤처럼 바꾸고 자유롭게 생활하리라 다짐했다.” 이후 ‘백발 베토벤 머리’는 그의 자유로운 삶을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마음껏 걷고, 산과 들판을 거닐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그는 내년부터 휴식기를 마치고 작품활동도 시작한다. 그런데 영화가 아니고 TV다. 그는 내년에 TV 드라마 ‘동방의 빛’에 출연한다. 그의 드라마 출연은 93년 방영된 드라마 ‘여자의 남자' 이후 16년 만이다.
“TV는 지금도 뛰어들 수 있지만, 영화 쪽에서는 우리 같은 노인을 등장시켜 성공하기 어렵다. 관객 한두 명만 앉아있는 극장을 생각하면 소름 끼친다. 당분간 영화출연은 없을 것 같다.” 그는 자신과 윤정희가 99편의 작품을 같이 했는데 “100편을 채우고 싶지만 제작자가 어떻게 날 믿고 영화를 찍겠어”하며 낙담한 표정이었다.
그의 출연작 중 최고 영화는 뭘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만희 감독의 ‘만추’를 강추했다. 또 35만명의 관객을 기록한 ‘맨발의 청춘’과 ‘안개’도 빼놓지 않았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이사장직을 맡아 3년째 대구를 문화의 도시로 업그레이드시키는 일에도 적극적인 그는 “지방 문화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강조했다.
신성일 프로필
본명: 강신영 출생: 1937년 5월 8일(대구광역시) 직업: 전 국회의원, 영화배우 가족: 워커힐서 1년 연상 배우 엄앵란 결혼(64) 학력: 경북고-건국대학교 국문학 학사 데뷔: 영화 '로맨스빠빠'(60) 대표작: ‘아낌없이 주련다’ ‘맨발의 청춘’ ‘떠날 때는 말없이’‘안개’‘흑맥’‘만추’‘별들의 고향’ ‘겨울여자’‘도시의 사냥꾼’‘길소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