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승마가 한국-소련 수교 전인 1989년 모스크바대회에 출전한 건 모르죠?"
승마 행정가로 36년이나 일하고 있는 국민생활체육 전국승마연합회 정성규(60) 처장의 말이다. 국내에서 승마계의 정사·야사를 정 처장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비롯,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까지 굵직한 국내·외 승마대회 중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대회는 없다.
그가 승마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74년이다. 군 전역 후 지인의 추천을 받아 24세의 나이로 승마협회 사무국장을 맡았다. 그리고 2004년까지 30년간 승마협회에서 몸담았다. 그는 2004년 승마협회를 떠나 2005년부터는 국민생활체육전국승마연합회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승마계의 발전을 눈으로 지켜봤다. 1970년대 승마는 말 그대로 특권층과 상류층의 스포츠였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표현이 어울렸던 시절이다. 정 처장은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일 년에 수입되는 유럽산 승마용 말이 10 마리가 채 안됐고 전국체전에 기껏 50여 마리의 말이 출전하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두 개 시·도 선수들이 말 한 마리를 번갈아 타며 대회를 치른 때도 있었다"며 "올해는 승마용 말 200두 이상이 수입될 전망이다. 30년 사이에 20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고 말한다.
승마행정가로 활약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989년 소련 모스크바 대회다. 그는 1990년 한국과 소련이 수교하기 전 승마 국가대표팀과 함께 모스크바대회에 동행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승마경기가 열렸던 경기장에서 대회가 열렸다. 정 처장은 "당시만 해도 아무나 갈 수 없었던 '철의 장막'을 승마가 뚫고 들어갔다. 혹시 잘못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기도 했지만 선구자의 감동같은 보람도 느꼈다. 그런데 공산주의국가에서도 고급스러운 실내 승마경기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게 이채로웠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60대에 접어든 정 처장이지만 아직 남은 목표가 있다. 엘리트와 생활 승마를 포함한 국내 전체 승마인구를 5만명 수준으로 늘리는 것이다. 승마 발전을 위해서는 물질적인 투자가 꼭 필요하지만 전체적인 승마인구의 증가가 우선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그는 "30년 전 국내 엘리트 승마선수 수가 200명 정도였는데 지금도 그 수준이다. 질적으로는 발전했지만 양적인 발전은 없었다"고 말한 뒤 "현재 국내 전체 승마인구는 약 3만명 수준으로 머물고 있는데 정도로 추산된다. 이를 5만명 정도로 끌어올린다면 한국 승마는 강력한 추진력을 얻게 될 것이고 대표팀의 세계 경쟁력도 그만큼 좋아질 것이다"고 전망했다.
채준 기자 [doori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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