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오픈한 김성환 화백(78)의 개인전 '그 시절 그 모습'전에 들어서면 향수에 젖어든다. 1960년대·70년대 서민들의 생활 모습을 담은 100여점의 그림이 풍겨내는 분위기는 정겨움, 그 자체다.
'고바우 영감'이란 애칭을 가진 김 화백은 이미 '한국의 피터 브뤼겔'이라 불릴 정도로 풍속화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이번 전시는 지난 몇 차례 전시에서 선보인 풍속화와 소품들을 뛰어넘고 있다. 그의 화풍은 6.25 전쟁 이후 서민들의 생활을 산뜻하면서 정감 넘치게 표현한다. 이번에 출품된 그림들은 모두 파스텔로 채색됐고, 오일 펜슬로 선을 입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과거 서민들의 삶은 그의 캔버스에서 사진 이상으로 사실적으로 재현된다. 수 십년 전의 풍경에 대한 디테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시절 이미 엄청난 양의 스케치로 지금은 사라진 풍경들을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 속 골목길에 붙어있는 작은 영화 포스터들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전시회에서 만난 신문수 화백은 "고바우 선생의 그림을 마주하고 있으면 내가 마치 그림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고 말했다. 김박 화백은 "그림 한 점에도 수 천개의 돌이 그려져 있다. 돌멩이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고바우 선생의 관찰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평했다.
김 화백은 마치 건물 2층에서 내려다본 듯한 시점으로 거리의 사물 하나하나를 포착하는 효과적인 연출법을 구사하고 있다. 시점이 너무 높아서 위압적이지도 않고, 너무 낮아 대상과 수평을 이루지도 않은 연출이다. 그는 1960년대 눈이 살짝 덮인 서울 시내의 한옥촌을 묘사한 작품 '기와지붕'에서 절묘한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새끼 소가 어미 소의 턱 밑에 얼굴을 부비고 있는 작품이나 모자가 장작불을 때고 있는 작품도 관람객의 걸음을 떼지 못하게 한다.
김 화백의 전시는 언제나 실험적이다. 2007년 열린 '고바우 서화(書畵) 소품전'에선 한자를 도안한 독특한 그림들을 선보였다. 오돌토돌한 베옷, 녹이 쓸락 말락 하는 유기그릇, 비취색 고려 청자의 질감이 나는 종이 위에 그림을 그려 새로운 화풍을 창조했다.
김 화백은 "지난 3년 동안 이 전시를 준비했다. 큰 작품은 세 달씩 걸린 것도 있다"면서 "서민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보람차다"고 말했다.
젊은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을 맞이하고 있는 이번 전시는 10월 4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