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여대생이 잠자리를 같이 한 남자들에 대한 평가를 작성한 일종의 섹스리스트가 유출돼 난리가 났다는 뉴스를 얼마 전 접한 적이 있다. 이 여대생은 그 리스트에 상대 남자들의 이름과 신체적 특징, 성기 사이즈까지 친절하게 적은 것은 물론 그들의 섹스 테크닉 정도를 막대 그래프로 표시하기까지 했단다. 그리고 이 리스트는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1등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에서도 결코 비교대상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섹스는 특히나 그 누구와도 비교되고 싶지 않은 영역이다. 게다가 남자들은 더하다. 자존심을 넘어 영혼까지 심각한 훼손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나마 미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 다행이다. 우리나라였다면 막대 그래프가 낮은 순서대로 다수의 남자들이 종적을 감췄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대생도 어딘가로 잠적하지 않고는 못견뎠을 것이다.
비교는 나쁘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참 희안하게도 자꾸 비교를 하게 된다. 논문을 쓸 것도 성적표를 낼 것도 아니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 등수를 매기게 된다. 대체 왜 이런 걸까?
물론 매번 섹스를 할 때마다 ‘이번 섹스는 점수로 치면 80점, 등수로 치면 10등 즈음 되는 섹스구나’하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또 사귀는 남자마다 ‘이번 남자의 성기 사이즈는 3등, 테크닉으로는 5등 즈음 되겠구나’하고 서열을 매기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느 한가한 날, 이 생각 저 생각, 특히 섹스 생각을 하고 있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지금까지 만난 남자들의 등수를 매기고 있을 때가 있다. 아마 많이들 그럴 것이다. ‘테크닉으로만 보면 1등은 A, 2등은 C, 3등은 B’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건 누가 더 사랑했고 누가 나쁜 놈이고 따위와는 상관없다. 그저 얼마나 잘 맞았고 얼마나 잘 했냐의 문제일 뿐이다.
어쨌든 자연스럽게 등수를 매기게 된다. 그리고 덤으로 1등에 대해서는 한번쯤 더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 그 녀석이랑은 참 좋았지’하고 말이다. 누군가는 ‘이참에 전화라도 한번 해볼까?’라고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길지도 모르지만, 대개는 그냥 생각만 하고 만다. 별 의미도 이득도 없는 행동이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비교당하는 게 싫어서 경험없는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결심하는 남자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은 여자들이 꼭 섹스를 잘 하는 남자의 등수만 매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느 날은 내게 가장 잘 해준 남자의 등수를 매기기도 하고, 어느 날은 그냥 가장 잘 생긴 남자 등수를 떠올리기도 한다. 가장 돈이 많았던 이, 가장 목소리가 좋았던 이, 가장 노래를 잘했던 이의 등수를 따져볼 때도 있다 그러니까 섹스 등수를 매기는 것도 결국은 우리가 누군가를 추억하는 방법의 한 가지였을 뿐인 것이다.
다른 건 아무렇지 않은데 섹스니까 기분이 더 나쁘다는 식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 나는 섹스 등수는 최하위지만 그래도 잘해준 남자로는 일순위일거야' 이렇게 자위해 보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다.
물론 나 역시 누군가의 기억에서 형편없는 등수로, 점수로 기억된다 할지라도 그냥 감수하겠다. 하긴 이제 와서 뭐 어쩌겠나.
●박소현은?
남녀의 불꽃 튀는 사생활에 비전문적 조언을 서슴지 않는 36세의 칼럼니스트, 저서로 '쉿! she it' '남자가 도망쳤다'가 있다. marune@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