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일, 마잉주 대만 총통은 야구국시회의(棒球國是會議)를 열었다. 국시회의는 국가 차원의 대책을 수립할 때 개최하는 회의다. 스포츠가 의제로 설정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국시회의답게 총리격인 행정원 원장을 비롯한 정계 최고위층이 참석했고, 경찰청장의 역할을 하는 경정서장도 자리했다. 프로구단 사장과 프로야구팬, 전문가들도 회의에 나섰다. 대만인들의 야구사랑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감정의 깊이만큼이나 실망이 컸다. 2009년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예선 탈락으로 힘겹게 출발한 대만야구는 그 해 프로야구서 터진 승부조작 사건으로 휘청였다. 마잉주 총통은 이날 회의를 마치며 "2010년을 야구진흥원년으로 삼자"고 했다.
국가차원의 지원과 감시로 대만프로야구는 무난하게 2010년 시즌을 마쳤다. 야오 지첸 사과일보 기자는 "승부조작 사건의 여파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만 프로야구는 기대 이상의 흥행을 거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010년이 진정한 야구진흥원년으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할 과제가 남아있다. 대만 야구의 창끝은 한국을 겨냥하고 있다.
소보상 연합만보 기자는 "대만 야구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을 꼭 넘어서야 한다"고 했다. 소 기자가 꼽는 '대만야구가 뚜렷한 하향세를 걷기 시작한 시점'은 2006년이다. 그는 "2005년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다. 그런데 이듬해 3월 1회 WBC서 대만이 한국에 패하면서 분위기가 더 가라앉았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서 한국을 이겼지만, 2008 베이징올림픽·2009 WBC서 모두 패했다. 팬들은 '올 해만큼은 반드시 한국에 승리해야 한다'고 기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가을, 한국과 대만은 세 차례 국제대회를 준비했다. 지난 달 대만에서 열린 대륙간컵에서 대만은 광저우아시안게임 대표선수를 대거 투입해 한국을 5-11로 눌렀다. 한국이 프로 1.5군 선수로 팀을 구성해 대륙간컵에 나선 것을 알면서도 대만팬들은 '한국전 승리'에 환호했다.
4일과 5일, 대만 타이중에서는 한국프로야구 챔피언 SK와 대만 프로야구 우승팀 슝디 엘리펀츠가 클럽챔피언십을 치른다. 공교롭게도 슝디는 2009년 승부조작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팀이다. 대만팬들은 자국 프로야구에 치욕의 역사를 남긴 슝디가 한국 챔피언을 꺾는 극적인 사건을 기대하고 있다. 물론 2010년 대만 야구의 최종목표는 중국 본토에서 열리는 광저우아시안게임서 한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거는 일이다.
타이중(대만)=하남직 기자 [jiks79@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