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후암선원으로 가는 길. 소나무길에는 낙엽이 떨어져 수북이 쌓여있었다. 처음 발을 디뎠을 때는 가을이란 생각에 운치가 느껴졌지만 계속 걷다보니 보도블록 위의 가을은 왠지 인위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나의 청년시절, 당시 대학로는 아름드리 은행나무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은행잎으로 길은 온통 황금물결이었다. 그 길을 천천히 걷다 창경원의 벤치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영화 '만추'의 라스트 신을 떠올리며 콧노래라도 흥얼거리면 가을은 온통 내 것이 된 것 같았다. 여주인공 문정숙이 하염없이 신성일을 기다리면서 벤치에 앉아 있으면 낙엽이 우수수 날아와 그녀를 휘감고 날아가는 그 장면처럼 가을은 쓸쓸하고 허무하지만 사랑했던 사람이 돌아올 것만 같은 설렘을 주곤 했다.
그러나 요즘 낙엽에선 옛날의 운치는 찾아보기 힘들다. 흙이 아닌 보도블록에 떨어졌기 때문일까. 가을이 되면 나무는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나뭇잎을 떨어뜨린다. 그 낙엽은 나무뿌리에 쌓여 시간이 흐르면 거름이 되어 땅속에 스며들고 후년 봄이 되면 다시금 나무에 싹을 틔우도록 돕는다. 죽음으로서 하나의 생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 낙엽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보도블록을 뒹구는 모습을 보니 얼마 전에 올린 구명시식이 떠올랐다. 소위 명문가 사람들이 법당을 찾아왔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가문으로 재력, 학력, 권력을 모두 갖춘 집안이었다. 그런데 구명시식 신청 사연을 뜻밖이었다.
"우리 아이가 얼마 전 자살을 했습니다." 부부는 자녀를 금지옥엽으로 키웠다. 태어나자마자 보모를 붙여 정성을 다해 키우도록 했고 학교를 다닐 때는 운전기사에게 픽업을 맡겼다. 청소년기에는 유학을 준비해 미국의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특별과외를 받게 했고 미국에 가서는 가정부를 구해 가사일과 식사를 해결하도록 배려했다고.
남들이 보면 완벽한 환경에서 자란 자식이었다. 모두가 꿈꾸는 스펙으로 키운 자식이 왜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부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우리 아이가 왜 자살을 했는지 꼭 알고 싶습니다."
구명시식에 나타난 영가는 너무나 우울해보였다. 한쪽 구석에서 어두운 얼굴로 부모를 물끄러미 보던 영가는 웬일인지 부모 곁에 오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영가는 싸늘한 얼굴로 "부모님은 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도통 입을 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부부는 자식을 사랑한다고만 해놓고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했다. 자신들의 노력은 단 1%도 없이 보모·운전기사·가정부의 손을 빌려 자식을 키웠고 결국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자식은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식을 돈으로 키워서는 안 됩니다. 자식에게 필요한 건 원초적인 부모의 사랑입니다. 젖을 물리고, 손수 아이의 옷을 빨며, 아픈 자식을 밤새 간호하는 정성이 자식을 훌륭하게 자라게 하는 겁니다." 내 말에 부부는 뒤늦게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영가의 마음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모름지기 자연의 생리를 따르는 삶이 가장 빛난다. 낙엽이 내년 봄에 피어날 새싹을 위해 흙과 하나가 되듯이 인간도 자식을 키우기 위해선 가장 본능적인 짐승의 모성이 필요하다. 보도블록처럼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인위적인 삶이 인간의 영혼을 더욱 외롭게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