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핸드볼 3·4위전에서 카자흐스탄을 38-26으로 완파한 여자 핸드볼 대표선수들은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 없었다. 동메달을 목에 건 선수 중 6명은 이제 돌아갈 곳이 없다. 지난 달 벽산건설이 핸드볼팀 해체를 선언했고 용인시청도 아시안게임 개막을 코앞에 두고 해체 결정을 내렸다. 이들의 '우생순'은 동메달로 끝난 이번 아시안게임이 될 수도 있다.
24일 홈팀 중국과 결승전에서 승부치기 끝에 패한 여자 하키대표팀 선수들은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하키계도 실업팀 해체 소문으로 흉흉했다. 임흥신 여자 하키 대표팀 감독은 "금메달을 따 위축돼 가는 하키계를 중흥시키고 싶었다. 하키인들에게 미안하다"며 은메달을 따고도 사과를 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금메달 75개를 땄다. 외국에서 열린 대회 최다기록이다. 한국 엘리트 스포츠가 세운 새 이정표다. 이번에도 비인기 종목의 활약이 컸다. 사격이 13개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고 펜싱은 금메달 7개를 휩쓸었다. 펜싱 종목에서 금메달 1위가 한국이었다. 볼링이 8개, 유도가 6개로 제 역할을 했다. 반면 속칭 인기스포츠 야구가 금메달 1개를 땄을 뿐, 축구와 농구는 실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날마다 뭉클한 휴먼스토리가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TV로 중계를 지켜본 시청자들은 오랜만에 접한 다양한 스포츠의 재미에 흠뻑 빠졌다. 하지만 이제 아시안게임은 끝났다. 사람들은 망각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선수들 위로 다시 무관심의 그늘이 드리운다.
묵묵히 훈련에 몰두하는 비인기 종목 선수들도 팬들의 관심을 먹고 자란다. 양궁은 한국 스포츠가 만들어낸 '세계 일류'다. 지도자와 선수들의 자부심이 대단하지만 자기만족만으로는 발전에 한계가 있다. 김성훈 양궁 남자 대표팀 감독은 "아시안게임은 우리에게 '성수기'다. 이 때가 돼야 우리를 주목한다. 그래도 좋다. 큰 대회에서 받는 관심만 있어도 우리들에겐 큰 힘이 된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바란다"며 취재진에 인사를 했다.
한국 엘리트 스포츠가 사회체육과 접점을 찾지 못해 균형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꾸준히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얼마 전까지 도무지 가능성이 없을 것 같던 기초·예술 종목에서 한국은 세계적인 선수를 키워냈다. 김연아가 세계 피겨계를 정복했고 박태환이 세계 수영계의 중심에 합류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정다래와 손연재가 스타로 성장할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들의 활약으로 팬들은 스포츠를 보는 시야를 넓혔다. 가능성 있는 선수를 대상으로 기업까지 나서 집중투자를 한 결실이다. 막대한 훈련비용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김연아는 세계 무대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자 훈련 여건이 좋은 캐나다에서 마음 놓고 훈련할 수 있었다. 박태환도 외국인 코치와 집중적인 해외 전지훈련으로 슬럼프에서 탈출했다.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다. 하지만 명확히 현실의 논리에 지배를 받는다. 투자 없이 양질의 '드라마' 제작을 바랄 수는 없다.
광저우=장치혁 기자 [jangta@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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