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승마 종합마술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전재식이 여유있게 장애물을 뛰어넘고 있다. IS포토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승마 종합마술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전재식이 여유있게 장애물을 뛰어넘고 있다. IS포토
전재식(43) KRA승마단 코치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종합마술 은메달을 땄다. 이는 한국 종합마술이 외국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거둔 첫 쾌거다. 전코치는 승마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자마(개인소유의 말) 한 마리 없이 한국을 대표하는 승마인으로 자리 잡은 그는 열정의 승마인이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종합마술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늦었지만 아시안게임 은메달 딴 기쁨을 동료들 및 말을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사실 전공 종목은 장애물이다. 처음 종합마술의 크로스컨트리에 도전할 때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몇 번 대회를 치르면서 자신감이 붙어 아시안게임에서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우리나라 선수들처럼 장애물 경험이 많은 우리나라 선수들은 크로스컨트리에 대한 경험만 쌓으면 충분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지금까지는 이번 광저우 대회가 가장 의미 있는 대회다. 앞으로 더 의미 있는 대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계획은 세웠나. “아직 런던올림픽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지금 상태로는 올림픽에 나갈 수 없다. 유럽에 있는 대회에 출전, 자격을 획득해야 한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종합마술 경기에 출전하기위해서도 역시 출전자격을 따야 한다. 올림픽을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아직은 조건이 충족되지 않고 있다.”
-말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인가. “1980년 중학교 1학년 때부터다. 당시 전 국가적으로 올림픽 꿈나무를 육성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승마를 시작했다. 13명이 같이 시작했는데 경제적 여건과 학업 등 여러가지 이유때문에 승마를 계속 하고 있는 사람은 나 하나 뿐이다. 1988년 꿈나무였지만 실제로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승마선수로 뛰지 못했고 자원봉사를 했다. 승마 장애물 관련 자원봉사자와 근대 5종 말 트레이너역할을 했다. 당시 올림픽에 출전한 최고 선수들을 옆에서 지켜 본 것만 해도 큰 경험이었던 것 같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승마는 귀족스포츠였다. “당시 나는 경기도 마석 인근이 고향인 시골 소년이었다. 집안 형편이 부유한 편이 아니어서 부모님께서 승마를 그만두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당시 경기도 승마협회에서 무상으로 승마 교육을 시켜줬지만 그래도 승마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그만두라고 할 때마다 고집을 피워서 여기까지 왔다.”
-경제적 여건이 힘든 가운데 승마를 계속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엘리트 승마 선수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말을 많이 타야하기 때문에 자마는 필수요건이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승마를 하면서 한번도 내 개인 소유의 말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내가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선배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끝까지 한번 해보자는 오기와 끈기로 견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