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섹시토크] 무릎이 까지도록 해봤어?
친구들과 나, 우리는 이제 명실공히 30대 후반이 되었다. 이제는 대충 중반이라 우겨볼 도리도 없게 되었다. 참고로 필자소개란에 적힌 나이는 연재를 시작할 무렵의 나이다.
20대 후반에 우리가 친해진 계기는 서로의 섹스 경험을 적나라하게 털어놓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20대의 여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섹스 경험을 말하는 여자, 절대 말하지 않는 여자. 말하지 않는 여자들 사이에서 외로웠던 우리는 서로를 만나 진심으로 즐거웠다.
그리고 꽤 오랜 세월, 한 가지 주제만으로도 술자리를 충분히 채우고도 남았다. 하고 또 해도 이야깃거리가 떨어질 일이 없었던 건 그만큼 우리의 밤 생활이 전성기였던 덕분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30대 후반이 되었다. 대부분 결혼했고 몇 명은 하지 않았다. 결혼했든 안했든 한 가지 공통되는 사실은 이제 예전만큼 섹스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업적인 사명감에 사로잡혀 내가 어쩌다 이야길 꺼내 봐도 대화는 금세 끝나 버린다. 더는 새로울 게 없었으니까.
섹스 이야기가 줄어들어 생긴 빈 자리는 재테크와 부동산, 아이 사교육 따위로 채워졌다. 물론 여전히 만나면 즐겁고 할 이야기가 넘치지만 가끔 공허해질 때도 있다. 재테크도, 부동산도, 사교육도 진짜 내 이야기란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얼마 전 J가 나서서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J는 갑자기 바지를 쓱 걷어 올리더니 무릎을 보여주며 말했다.
“나 무릎 까졌어.”
큰 상처는 아니고 피부가 조금 벗겨진 정도였다. 빙판길에 미끄러졌나 싶어 다들 아팠겠다고 동정을 쏟아놓는데 J가 빙긋이 웃으며 말한다.
“이거 섹스하다 생긴 상처야.”
우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J의 말이 너무나 신선하고 그만큼 낯설게 들렸기 때문이다. 물론 몇 초 뒤엔 다들 “뭘 어쨌길래?”하는 말이 동시에 터져 나왔지만 말이다.
이야기의 전말은 별 게 아니었다. 외풍이 심해 침대를 마다하고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지지며 잔지 오래되었단다. 매트를 깔긴 해도 그게 얇은 데다 J 표현대로라면 간만에 다소 과격하게 움직이다 보니 매트가 밀렸단다. J네는 작년에 큰 돈을 들여 원목마루를 깔았다. 그 마루를 무릎으로 한참 밀어대다 보니 까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J가 놀란 건 무릎이 까진 것 자체가 아니라 집중하느라 까진 지도 몰랐다는 사실이었다.
“무릎은 아픈데 기분은 좋더라. 꽤 열정적으로 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니까.”
‘상해’를 통해 간만에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는 J 덕분에 우리도 간만에 할 이야기가 생겼다. 지금보다 몇 살씩 더 어렸을 때 싸구려 침대 위에서 정신없이 하다 침대가 주저앉은 이야기며, 머리맡 선반이 떨어진 이야기며, 애인의 등에 피멍이 든 이야기며…. 꺼내다보니 우리도 꽤 열정적이었구나 싶었다.
그러다 한 친구가 말했다.
“무릎 한번 까지면 오래 가는데 다음엔 네 남편보고 위로 올라가라고 그래.”
J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남편 배가 너무 나와서 위에 올라가면 내가 숨을 못 쉬잖아.”
아, 또 그런 속사정이 있었구나.
섹스의 질이야 어쨌든간에 J부부가 겉으로나마 대단한 흔적을 남긴 과격한 섹스를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싶다. 그리고 나도 심각하게, 바닥 생활을 시작해볼까 고려하는 중이다.
박소현은?
남녀의 불꽃 튀는 사생활에 비전문적 조언을 서슴지 않는 36세의 칼럼니스트, 저서로 '쉿! she it' '남자가 도망쳤다'가 있다. marune@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