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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없으면 잇몸’ 정선민 빠진 신한은행, 신세계에 신승
에이스 없다고 무너질 왕조는 아니었다. '신형 엔진' 김단비(21·안산 신한은행)가 선배 정선민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웠다.
정규리그 우승팀 신한은행이 16일 안산에서 열린 여자 프로농구 플레이오프(5전3선승제) 1차전에서 부천 신세계를 101-82로 꺾고 다섯 시즌 연속 통합 우승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역대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 승리팀이 챔피언결정전에 오를 확률은 84%(32차례 중 27차례)나 된다. 신한은행은 2007년 겨울리그부터 플레이오프 12연승을 이어갔다.
대승을 거두리라곤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신한은행은 만능 포워드 정선민이 부상으로 빠졌다. 임달식 신한은행 감독은 "왼 종아리 피로 골절로 전치 4주가 나왔다. 챔프전 출전도 어렵다"고 말했다. 정선민은 올 시즌 평균 9.6점에 그쳤지만 네 시즌 연속 통합 우승의 주역으로 큰 경기에서 제 몫을 해줄 선수였다. 임달식 감독은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엄살이었다. 올 시즌 주전으로 자리매김한 김단비가 전반에만 17점을 퍼붓는 등 두 팀 통틀어 가장 많은 27점을 터뜨리며 정선민의 공백을 말끔히 지웠다. 곱상한 외모와 달리 돌파는 거칠었고, 슛은 던지는 족족 림에 빨려들어갔다. 신세계 김정은은 김단비의 빠른 발을 따라가지 못하고 번번이 뚫렸다. 김단비는 이날 속공만 7개를 했다. 김단비가 2쿼터 4분께 김정은을 제치고 점프슛을 넣자, 정인교 신세계 감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늘 경기 힘들겠다'는 의미였다. 올 시즌 득점왕 김정은은 25점을 넣었지만 김단비에 가려 초라해 보였다.
둘은 묘한 라이벌 관계다. 김정은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까지 국가대표 주전 포워드로 활약했다. 하지만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와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김단비에 자리를 내줬다. 김정은은 부상 탓에 대표팀 명단에 들지도 못했다. 차세대 국가대표 주전 포워드를 가늠해보는 이날 경기에서도 김단비가 좀 더 잘했다.
신세계는 1쿼터 8점 차, 2쿼터 17점 차로 뒤지더니 3쿼터엔 25점 차까지 끌려갔다. 김단비를 막지 못한데다 김계령과 강지숙이 경기 내내 신한은행 강영숙에 골 밑을 장악당한 게 뼈아팠다. 강영숙이 19점을 넣는 동안 김계령은 9점, 강지숙은 8점에 그쳤다.
임달식 감독은 휘문고-고려대 후배인 정인교 신세계 감독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81-56으로 경기가 기운 4쿼터에도 2m2㎝의 최장신 센터 하은주와 베테랑 가드 전주원·국가대표 가드 최윤아 등 베스트 멤버를 총 출동시켰다. 신세계의 기를 확실하게 꺾어놓으려는 심산인 듯했다. 한 경기 100점 돌파는 올 시즌 처음있는 일이다. 경기가 끝난 뒤 신세계 선수들은 고개를 들지 못 했다.
안산=김우철 기자 [beneat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