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면 뭐든지 다 될 것만 같은 세상이다.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도 이젠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예전에는 가난한 집에서 곧잘 우등생이 나왔지만, 요즘엔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학업 성취도와 비례하는 추세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스포츠도 이런 세태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탈리아 세리아 A의 인터 밀란과 AC 밀란 등 유럽 빅리그의 강팀은 어김없이 거대 자본으로 우수한 선수를 사들이는 팀이다.
하지만 올 시즌 K-리그는 다르다.
1년 예산이 80억원 선으로 빅클럽의 절반도 안 되는 가난한 시민구단 대전 시티즌이 돌풍의 핵이다. 홈구장인 대전 월드컵경기장이 잔디 보호를 위해 사용 금지령을 내린 탓에 대전은 훈련할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곳이 없는 가난한 고학생 같은 처지다. 그런데 K-리그에서 3승1무로 무패가도를 달리며 리그 1위다. 팀을 지휘하는 왕선재 감독마저 “리그 1위는 상상도 못했다”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그는 “우리 선수들은 용기와 패기가 전부다. 편안하게 준비한 경기가 한 경기도 없다. 쉬운 상대도 없다. 강원과의 경기에서 끝까지 조직력과 정신력으로 버텨준 선수들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선수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대전뿐만 아니다. 경남(3승1패·4위), 상주(2승2무·5위), 대구(2승1무1패·7위)가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고 있다. 반면 현대산업개발·현대중공업·GS 칼텍스·현대자동차 등 유수의 대기업이 뒤를 받치고 있는 부산 아이파크(1무3 패·15위), 울산 현대(1승3패·13위), FC 서울(1승1무2패·11위), 전북 현대(2승2패·9위)는 하위권에 처져있다. 거액을 투자하는 이런 팀 입장에서는 속 쓰린 일이다.
올 시즌 프로축구는 30라운드로 치러진다. 이제 4라운드가 끝났으니 전체 일정의 13% 정도를 소화했다. 아직 87%나 남았다. 봄이면 잠깐 피었다 지는 벚꽃처럼 대전의 일장춘몽도 곧 끝날 것이라는 게 축구 전문가의 예상이다. 선수층이 얇아 장기 레이스에서 전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K-리그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서울·수원 등 수도권의 빅클럽이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현실론도 만만치않다. 대전 같은 팀이 잘해봐야 K-리그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이런 논리를 깨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대전 팬들의 응원. 대전은 오는 10일 홈경기를 치른다. 대전 팬들의 열광적인 성원을 기대한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공부를 잘하는 자식에게 격려라도 화끈하게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해준 스포츠 1팀장 [hjlee7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