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영화광’ 필 잭슨의 메시지, 이번에도 통할까?
필 잭슨 레이커스 감독은 영화광이다. 아무래도 기나긴 정규시즌을 치르다 보면 비행기와 호텔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많아 틈만 나면 영화를 본다고 한다. 그는 영화를 보면서 마음에 와닿는 부분은 따로 메모해 놓는다. 그리고 플레이오프 때에 맞춰 비디오 코치에게 자신이 인상깊다고 생각한 장면을 '게임 플랜 비디오'에 삽입시켜 달라고 주문한다.
지난해에는 퀜틴 타란티노의 영화 ‘Inglorious Basterds’로 재미를 봤다. 이번에는 뉴올리언스 호네츠와의 플레이오프 시리즈를 앞두고 호네츠의 경기 필름을 준비하면서 ‘True Grit(트루 그릿)’을 택했다. ‘True Grit’은 ‘진정한 투지’라는 뜻. 코엔 형제가 연출했고 제프 브리지스, 맷 데이먼이 주연으로 나온 서부 영화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등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던 영화다. 14세 소녀 매티가 자신의 아버지를 잔인하게 살해한 무법자에게 복수를 다짐하고, 젊은 시절 악명 높았던 연방보안관을 고용해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는 ‘더 브레이브’라는 타이틀로 개봉됐다.
잭슨이 레이커스 멤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바로 ‘투지’다. 영화 속 작은 소녀의 끈질긴 투지를 보고 배우라는 뜻이다. 그는 멤버들에게 “내가 왜 이 영화를 택했는지, 제목을 주시하라”면서 마음 속에 투지를 불사를 것을 주문했다. 정규시즌 막바지에 5연패에 빠지는 등 레이커스 멤버들의 정신상태가 헤이해진 것을 간접적으로 다그친 것이다.
영화를 보면 코비 브라이언트도 보고 배울 내용이 담겨있다. 아무리 자신감이 철철 넘치고 최고의 킬러본능을 갖췄다 하더라도 큰 일을 앞두고는 마음을 다시 한 번 강하게 다스릴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가 들어있다. 무엇보다 ‘트루 그릿’의 정중앙에는 ‘호사다마’를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이 있다. 사람들은 성공을 쟁취한 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게으름에 빠져 실패의 나락에 떨어지기 일쑤.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레이커스도 시즌 내내 나태한 자세를 지적 받았다.
레이커스의 1차전 패인도 잭슨의 우려대로 투지 부족이었다. 코비와 론 아테스트를 제외하고 나머지 멤버들이 맥없는 플레이로 일관했다. 잭슨과 코비는 특히 8점에 그쳤던 파우 가솔이 2차전서 제 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차전서 투지 넘쳤던 팀은 오히려 호네츠였다. 호네츠는 경기 시작부터 정규시즌서 레이커스 맞대결 4연패의 사슬을 반드시 끊겠다는 의지가 역력했다. 특급 가드 크리스 폴은 33점 14어시스트 7리바운드로 레이커스 디펜스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이번 2차전에서 레이커스가 투지를 보여야 할 부분은 디펜스다. 1차전에서 레이커스는 빅맨들의 공수전환이 늦어 폴에게 뚫린 횟수가 8번이나 됐다. 레이커스 디펜스가 허술했던 것은 턴오버가 그대로 말해준다. 호네츠는 경기 시간 48분 동안 단 3번의 턴오버만 허용했다. 실수가 적으면 대어를 낚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셈이다.
레이커스 코치들은 멤버들에게 공수전환 보다는 부지런한 대인방어에 집중할 것을 요구했다.
일단 기록상으로 1차전 패배는 찜찜하다. 레이커스는 16번의 우승, 31번의 서부 우승을 차지한 최고 명문팀이지만 오프닝 라운드 1차전서 패한 경우, 시리즈서 이긴 경우가 3번, 그에 반해 패배는 9번이나 된다. 그래도 레이커스에 희망적인 소식 하나가 날아들어 다행이다. 수두를 앓던 가드 스티브 블레이크가 2차전에 복귀, 레이커스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로스앤젤레스=원용석 중앙일보USA 기자 [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