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창 선수, 아니 윤시호 선수 전화 번호 맞나요?"
대구 FC의 왼쪽 측면 수비수 윤시호(27)와 전화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그의 이름은 윤홍창이었다. 하지만 K-리그 8라운드서부터 대구 선수 명단에 윤홍창이란 이름은 없다. 이번 주 구단에는 '윤시호' 세 글자가 새겨진 새 유니폼이 도착했다. 그는 이제 대구의 23번 윤시호다. K-리그 연맹은 28일 "대구 윤홍창 선수가 개명으로 K리그 선수 등록명을 윤시호로 변경했다"며 선수 성명 변경을 공시했다.
그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은 27년간 불려온 이름을 바꾼 이유였다. 그가 웃으며 답했다. "축구 잘하고 싶어서요. 최선을 다해 이름을 알려보고 싶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촉망받던 선수였다. 고교시절 이미 키 183cm에 몸무게 80kg의 건장한 체격을 갖췄다. '왼발 스페셜리스트'로 주목을 받았다. 18세 대표팀·20세 대표팀 등을 두루 거쳤다. 정조국·최성국 등이 당시 청소년 대표팀 동기였다. 2003년 동북고를 졸업한 뒤에는 곧바로 K-리그 명문 FC서울에 입단했다. 프로의 세계는 혹독했다. 포지션 경쟁자 김동진(29·서울)에 밀려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다. 김동진이 팀을 떠난 뒤 조금씩 출전 기회를 늘려가던 2008년에는 부상이 찾아왔다. 햄스트링 파열. 그는 이후 2시즌 동안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했다. 그 사이 '윤홍창'이란 이름은 점점 잊혀져 갔다.
그는 "유명한 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내 이름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점점 사라졌다.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모두 괴로웠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9월에 태어난 아들 성빈(1)군의 이름을 짓기 위해 찾은 작명소에서 "이름을 바꾸면 축구를 더 잘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귀가 솔깃해졌다. "'홍창'이 발음하기 쉬운 이름은 아니다. 다들 '홍찬'으로 부르곤 했다. 어려서는 이름 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았다. 별명이 '곱창'이었다. 부모님과 상의한 끝에 개명을 결심했다."
새 이름은 베풀 시(施) 맑을 호(淏), 시호로 정했다. 발음도 쉽고 뜻도 마음에 들었다. 올 해 초 법원에 개명을 신청했다. 이때부터 좋은 일이 겹쳤다. 프로 데뷔 시절 그를 눈여겨봤던 이영진 대구 감독이 "새 출발을 해보자"며 손을 내밀었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올 시즌 7경기에 나서 대구의 초반 돌풍에 힘을 보탰다. 지난주 드디어 개명에 관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윤시호는 "홍창보다는 시호가 확실히 부르기에도 듣기에도 부드럽다. 선수들끼리 내 이름을 부르며 웃다 보니 팀 분위기도 밝아졌다"며 웃었다. 그는 "선수로서 마지막 도전을 한다는 각오다. 최선을 다해 내 이름 '시호'를 알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홍창이가 실전 경험을 늘리고 자신감만 찾는다면 충분히 훌륭한 선수로서 이름을 날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감독에게는 아직까지 시호보다 홍창이 입에 익은 모양이었다.
이정찬 기자 [jaycee@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