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 그는 '포항의 레전드(전설)'로 불린다. 아직도 포항팬들은 90년대 홍명보·라데·안익수 등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던 '황선홍 선수'를 잊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게서 '황선홍 선수'의 기억을 지워나가고 있다. 그 자리에 '황선홍 감독'의 이미지를 새로 새기고 있다. 지난해 9위(8승 9무 11패)에 그쳤던 포항은 올해 황 감독이 부임한 뒤 K-리그에서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다. 5승 3무. 선두질주 중이다. '감독 황선홍'의 모습에는 숱한 실패, 그로인한 비난 끝에 기어이 골을 넣고 말았던 그의 현역시절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스포츠 각계에서 날아든 질문에 답하는 태도도 다르지 않았다. 특히 지동원(전남)·고무열(포항) 등 공격수 후배들의 질문에는 여느 때보다 성의있고 진지하게 답했다. 지금의 황선홍을 있게 한 인생 선배들선홍이 너를 처음 본 게 벌써 30년 전이구나. 아직도 너와 네 동기들 나승화·황귀룡·김용환 등이 늘 함께 열심히 운동했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다른 친구들 만나니까 네가 연락이 잘 안된다고 하던데 요즘에는 자주 만나니. (김형인·용문중학교 시절 은사)"선생님 찾아뵌 지도 오래됐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지방(부산·포항)에만 있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다른 친구들도 모두 생업이 바쁘다 보니 자주 만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연락은 종종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시즌 끝나고 친구들 만나 술 한잔 하며 옛날 얘기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올 연말에는 꼭 동창회 한 번 주선하겠습니다. 선생님 그때 꼭 나오셔야 되요."
황 감독은 자서전 '황선홍, 그러나 다시'에서 김형인 선생님에 대해 "아버지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아버지 같은 정다움을 느꼈던 것은 선생님이 처음이었다"고 기억했다. 김 선생님은 당시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황선홍이 상처받지 않고 운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몰래 합숙비를 대신 내주곤 했다.
내가 대학 3·4학년 때 우리가 룸메이트였지. 그때 선홍이 네가 내 빨래고 뭐고 정말 허드렛일 다 했었지. 나를 무서워했던 것 같은데 학교 다닐 때 어땠니. (고정운 성남 코치)"아. 정말 무서웠죠. 다른 방에 있는 후배들이 감히 방 근처에 올 엄두도 내지 못했잖아요. 그때 떠올리면 정말 고생한 생각만 나요. 빨래는 물론 선배 잔 신부름까지 도맡으며 하루 종일 붙어 있었지요. 하지만 후배들이 선배 앞에서 꼼짝도 못했던 것은 무서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축구를 정말 무서울 만큼 아주 열심히 하는 사람인 데다 실력까지 출중해서 누구도 대들지 못했죠. 어느덧 결혼하고 아이도 생긴 이제는 서슴지 않고 농담도 하는 사이가 됐죠. 대학 시절에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웃음)"
황선홍의 동료들 우리는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던 걸까. 초·중·고등학교 내내 같은 학교에 다녔지. 포항에서 다시 만났고. 그동안 우리는 정말 운동 외에 한 것이 없었던 것 같다. 새벽 2~3시까지 체육관에서 운동한 기억이 난다. 만약 학창시절로 돌아가면 꼭 해보고 싶은 일탈이 있나. (나승화 현 강원 육민관중 감독·단짝 친구)"그러게 말야. 뭐가 있었을까. 대학시절 미팅 제대로 못해 본 건 조금 아쉽네(웃음). 우리가 유일하게 떨어져 있던 때가 대학시절이잖냐. 대학교 2학년 때 딱 한 번 미팅해봤는데 워낙 숫기가 없어서 제대로 말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축제 때도 훈련만했고. 캠퍼스 생활이란 걸 거의 누려보지 못했지. 근데 미팅같은 건 일탈에 들어가지 않지 않나. 그나저나 좋은 선수 있으면 꼭 귀띔해줘라."
요즘 고교팀을 이끌다 보니 최대 관심사는 제자들의 진로가 되더라고. 형, 솔직하게 말해줘요. 실력이 뒷받침 된 선수의 경우 대학에 진학해 경험을 쌓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조금 힘들더라도 프로무대에 도전하는 게 맞다고 봐요. (유상철 춘천기계공고 감독)"나는 후자야. 나도 대학을 졸업한 뒤 프로에 왔지만 축구로 인생의 승부를 볼 생각을 했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프로에 뛰어드는 게 난 것 같아.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온 뒤 1·2년 정도 적응기간을 마치면 바로 군대에 가야해. 그리고 제대하면 또 달라진 리그에 1·2년 적응해야되고. 프로 선수로서 뛸 수 있는 시간이 정말 얼마 없는 거지. 기회가 온다면 바로 프로에 진출하는 게 낫지 않을까."
코치를 맡은 뒤로 마땅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찾지 못해 고생하고 있어요. 황 감독님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요. 좋은 방법이 있으면 공유합시다.(최진철 강원FC 코치)"어디서 코치 스트레스와 감독 스트레스를 비교하냐(웃음). 농담이고. 나는 운동을 해서 땀을 쭉 빼고 나면 좀 스트레스가 풀리더라. 러닝 머신 위를 달릴 때도 있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도 있지. 반신욕도 종종하고. 우리 삶이 하루 종일 축구만 생각하는 삶이잖냐. 계속 그렇게 매몰돼 있으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 같아. 쫓기지 않으려고 노력해. '고민'보다는 '생각'이 필요한 거 아니겠니."
◇황선홍 프로필
생년월일 : 1968년 7월 14일
체격조건 : 183cm·86kg
선수시절 포지션 : 스트라이커
A대표팀 성적 : 103경기 50골
선수경력 : 독일 레버쿠젠 아마추어팀(1991)-독일 부퍼탈(1992)-포항(1993~1998)-세레소 오사카(1998~1999)-수원(2000)-가시와 레이솔(2001~2002)-전남(2002~2003)
지도자경력 : 전남 2군 코치(2003~2004)-전남 코치(2005~2006)-부산 감독(2007~2010)-포항 감독(2011~현재)
별명 : 황새
취미 : 여행
좋아하는 음식 : 포항 환여횟집의 물회
가족관계 : 아내·아들 둘·딸 하나
혈액형 : O형이정찬 기자 [jayc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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