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한무제의 무덤에서 발굴된 청동한혈마를 모사한 동상으로 처진턱과 역동적인 모습이 잘 표현돼 있다. http://cafe.daum.net 캡처. 1981년 한무제의 무덤에서 발굴된 청동한혈마를 모사한 동상으로 처진턱과 역동적인 모습이 잘 표현돼 있다. http://cafe.daum.net 캡처.
중국 한나라 무제는 한혈마를 얻기 위해 7만명의 목숨을 희생했다. 큰 대가를 지불하고 손에 넣은 한혈마는 중국의 대표적인 명마인 오추·적토마를 역사에 등장시켰다.
한무제가 한혈마에 집착했던 이유는 북방 흉노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였다. 무제는 기마민족인 흉노를 누르기 위해서는 흉노의 말보다 더 강하고 빠른 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무제가 한혈마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장건 덕분이다. 무제는 흉노를 압박하기 위해 서역 나라들과 동맹을 원했고 장건을 특사로 파견했다. 장건은 서역과 동맹을 맺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서역의 정보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때 한혈마의 존재도 알려졌다.
장건은 서역의 대완국에는 하루 1000리를 달리고 피같은 붉은 땀을 흘리는 말이 있다고 소개했다.
처음 무제는 일반적인 통상 교섭을 통해 한혈마를 손에 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대완국은 금으로 만든 말 모형을 가지고 찾아간 한나라의 사자를 죽였다. 이에 분노한 한무제는 군사를 일으켜 대완국을 정벌하고 한혈마를 빼앗기로 마음을 바꿨다. 두 번에 걸친 대규모 원정은 모두 이광리가 이끌었다.
1차 원정에서는 기병 6000과 수만의 보병이 원정에 나섰으나 보급이 부족해 원정에서 실패했다. 1차 원정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는 20%에 불가했다. 2차 원정에서는 원정군의 규모를 늘렸다. 총 6만명의 병사와 말 5만 마리 소 10만 마리가 원정에 참가했다. 원정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대완국 정벌로 한나라는 한혈마 암수 3000마리를 얻었고 매년 상위급 말 암·수 한 마리씩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6만의 병사중 살아 돌아온 병사는 1만에 불과했다. 싸움에서는 이겼지만 가혹한 사막기후에 군사들은 목숨을 잃었다.
1차 원정에 출전한 병사의 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1차 원정군이 2차 원정의 절반인 3만명이라 가정하면 한무제는 1~2차 원정에 무려 9만의 대군을 파견한 것이다. 그러나 살아 돌아온 병사는 1만6000여명에 불과하다. 7만4000여명은 사라졌다.
그러나 한무제는 1~2차 원정을 이끈 이광리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한혈마를 얻었으니 그것으로 모든 잘못을 불문에 부친 것이다.
얼마나 좋았으면 한혈마를 칭송하는 시까지 지었을 정도다.
역사 기록으로만 남아있던 한혈마는 1981년 다시 태어났다. 이전까지 한혈마의 현실적인 이미지가 없었다. 그러나 1981년 무제의 묘인 무릉에서 도금된 청동마상이 발굴됐다.
이 마상은 달리기 위한 훈련을 하지 않으면 생길 수 없는 근육이 묘사돼 있다. 또 몸은 세련되고 균형이 잡혀 있었고 비율상 덩치는 컸던 것으로 보이며 귀는 옆으로 누워 있다. 또 아래턱 부분이 늘어져 있는데. 이것은 딱딱한 것을 항상 먹었다는 뜻이다. 또 번식을 위한 생식기가 달려 있었다.
전문가들은 한혈마의 조상이 현재의 투르크메니스탄이 원산지인 아할테케인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한무제가 한혈마를 위해 지은 시
천마가 왔도다. 서쪽 끝에서 사막을 넘어 찾아왔도다. 오랑캐의 나라를 모두 복속시키고 왔도다.
천마가 왔도다. 샘터에서 왔도다. 호랑이와 같이 등뼈가 가지런하고 달리니 귀신과 같도다.
천마가 왔도다. 불모의 사막을 지나 동방의 길을 찾아왔도다.
천마가 왔도다. 별이 동남쪽에 왔을 때 사람을 태우고 날아오를 것이라.
천마가 왔도다. 궁궐에 들여 신묘히 올라타고 곤륜으로 갈거나.
천마가 왔도다. 용이 주선한 것이로다. 천마가 왔도다. 다음은 용을 타고 천제의 옥대를 볼 수 있으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