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을 것이다. 승부 조작이라는 게 내부 제보가 없으면 꼬리를 밟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축구협회와 프로연맹은 대책 마련을 한다고 진상 조사위원회 같은 조직을 만들 것이다. 그러나 진상 조사 위원회는 경찰과 검찰 수사로 밝혀진 내용 이상을 결코 밝혀내지 못할 것이다. 일벌백계를 한답시고 승부조작 연루가 드러난 몇몇 선수가 중징계를 받을 것이다. K-리그는 그 전과 별로 달라진 것 없는 모습으로 치러질 것이다.
이미 그랬던 경험이 있다. 2008년 K-3와 내셔널리그에 승부조작이 있다는 게 검찰 수사로 밝혀졌다. 축구협회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하지만 진상조사위원회는 진상은폐위원회에 가까웠다. 검찰 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몇몇 K-3 구단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고, 내부적으로 징계를 받기도 했지만 진상조사위원회를 이를 덮어버렸다.
축구협회나 프로연맹이 이런 태도를 보였던 것은 이해할만한 구석이 있다. 문제를 커다랗게 만들면 자칫 축구라는 종목이 위험해지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레슬링처럼 망가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그러나 승부조작은 더이상 내부 단속이나, 교육강화같은 순진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승부 조작의 실체를 덮으려는 건 축구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승부조작을 하는 세력을 보호하는 일이다.
기자가 예상한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앞으로 승부조작을 자행하는 검은 세력은 한층 더 대담해질 것이다. 검찰이 승부조작에 대한 발표를 한 이후 취재 과정에서 한 선수는 “이제 이걸로 검찰 수사는 거의 끝이라던데요”라고 말했다.
윤기원 선수가 자살했을 때, 풋볼카페는 ‘그의 죽음 뒤에 승부 조작 세력이 버티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문제제기했다. 그 의혹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유족도 수사를 원하고 있다. 다행히 경찰에 이어 검찰도 수사에 나섰다.
프로연맹은 26일 긴급 단장회의를 연다. 어떤 대책을 마련할 지 주목된다. 최근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 회장은 인터폴 사무총장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세계 축구의 수장인 그는 축구계에 만연한 승부조작에 대해 직접 밝히며 인터폴과 공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축구계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건, 벌써 여기저기에서 사실을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1팀장 [hjlee7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