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미국 9.11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에 의해 사살됐다. 작전명은 '제로니모 작전 중 사망'. 미국 측 발표에 의하면 그는 비무장상태로 부인과 딸 앞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며 그의 시신은 아라비아 해에 수장됐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사망 당시 사진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유는 너무 끔찍하다는 것.
사망당시 사진도, 시신도, 그의 죽음을 증언할 사람도 없다. 뭔가 미심쩍고 석연치 않은 구석은 많지만 공식적으로 미국도, 탈레반도 그의 사망을 인정한 상태다. 나는 빈 라덴의 사망소식을 접하는 순간 2인자들의 허망한 죽음이 뇌리를 스쳤다.
'사막의 여우'로 불렸던 에르빈 롬멜. 1891년 부유한 독일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아프리카 군단을 이끌며 연전연승했다. 연합국과 아프리카 영국 군대는 롬멜을 두려워하면서도 존경했다. 오죽하면 영국 수상이던 처칠이 의회 공식 연설에서 전쟁과 상관없이 롬멜을 위대한 장군이라 평한다고 했겠는가.
하지만 롬멜은 1944년 히틀러 암살 작전을 공모한 죄로 히틀러가 보낸 게슈타포에 둘러싸여 자살한다. 그가 히틀러 암살을 주도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평소 롬멜이 히틀러에 보낸 충성심은 대단했다. 그런 그가 과연 히틀러를 죽일 생각을 했었을까.
아마도 반대가 아니었나 싶다. 히틀러는 잘 알려진 대로 질투심이 굉장히 강한 인물이었다. 콤플렉스와 시기심·의심 등 인격적 결함이 많았던 그에 비해 롬멜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부유하며 귀족적인 가정환경, 뛰어난 지도력과 실전감각, 최고의 장군이라 평가받는 세계인들의 시선까지. 결국 히틀러는 자신을 암살하려 했다는 이유로 롬멜을 죽인다. 2차 세계대전이 낳은 위대한 장군 롬멜은 게슈타포가 건넨 청산가리를 먹고 자신의 벤츠 안에서 눈을 감았다. 마치 모든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그의 행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했다.
아르헨티나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죽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의사의 길을 걷던 그는 남미여행으로 자신의 진로를 완전히 바꾼다. 혁명의 꿈은 현실이 되어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의 친미독재정권인 바티스타 정권을 붕괴시키는데 성공하지만 카스트로가 자신의 동생을 2인자로 내세우자 볼리비아로 떠나 바리엔토스 정권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치다 볼리비아 정부군에 잡혀 총살된다.
카스트로는 체 게바라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지만 그 역시 체 게바라를 죽게 방치했다는 게 맞다. 충분히 그를 도울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카스트로에게 체 게바라는 히틀러에게 롬멜과도 같은 언젠가 없애야할 빛나는 2인자였던 것이다.
나의 부친인 차일혁 총경은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 중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을 사살했다. 박헌영과 더불어 2인자였던 그의 죽음에 북측은 어떠한 군사적 도움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이현상은 북의 애국렬사능에 제1호로 묻혔으며 그의 가족들은 중앙공산당 핵심직을 맡고 있다. 역사는 2인자들의 최후에 침묵한다. 나는 빈 라덴이 실질적인 1인자가 아니었음에 씁쓸했다. 잘난 2인자는 결국 1인자에게 죽는다. 탈레반의 실질적 리더는 아직 살아있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