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군주 세종은 한글뿐 아니라 조선의 말 산업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던 명군이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까지 조선은 기마민족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는데 이것도 세종의 활약 덕분이다. 조선 초 한국을 대표했던 명마는 세종의 야심작 오명마다.
덩치가 크고 체력이 강한 오명마는 세종 시절 한반도의 토종말과 몽골·중앙아시아말의 교배에 의해 탄생했다.
말 개량 사업을 전담한 곳은 사복시다. 사복시는 고려·조선 시대 궁중의 가마·말·목장 등을 관장한 관청으로 세종 때는 신품종의 말 생산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당시 말은 농업·운송·국방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당연히 강하고 지구력이 뛰어난 말은 국가를 부강하게 했다. 말은 현재의 사용 화물차·승용차· 군용 장갑차·농업용 트랙터 뿐만 아니라 통신(파발)의 역할까지 했다.
사복시는 부단한 노력 끝에 20여종(말의 털색으로 구분)의 준마를 안정적으로 뽑아내는데 성공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오명마다. 오명마는 온몸이 검지만 네발과 이마에 흰털이 나는 말이다.
조선은 초기 4군 6진을 개척하며 국토를 넓혔고 물산이 풍부해지는 등 부강했다. 이것은 세종의 말산업 발전 정책이 효과를 봤기 때문이다.
말 개량에 성공한 조선은 당대 동아시아 최고의 말 생산국으로 인정받았다. 최근 현대·기아차가 세계무대에서 인정받는 것과 비교할 만한 업적이다.
그러나 말 개량에 성공한 것이 화를 불렀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통일왕조가 생기면 한반도를 괴롭혔다. 명나라도 세종에 의해 탄생한 명품에 눈독을 들였다. 말에 대한 욕심이 큰 중국 명나라는 조선에 매년 1000마리의 말을 상납할 것을 명령했다. 특히 각 종류별로 씨수말과 씨암말 말의 숫자를 정했고 기준에 맞지 않으면 퇴짜를 놓았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명은 자국에 강한 기마대를 키우기 위해 좋은 말을 공급받고 동시에 과중한 조공을 통해 조선의 국력 성장을 막는 것이다.
세종시절 국내 말산업이 크게 성장했지만 1000마리의 특급 말을 항구적으로 상납할 수 있을 정도로 시장과 경제규모가 발전하지는 못했다.
또 매년 1000마리의 말이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국내에는 좋은 말의 씨가 말랐다. 임진왜란으로 경제가 무너진 이후 조선은 실질적으로 크고 좋은 말을 보유할 수 없게 됐다. 현재 세종의 명품인 오명마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