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섹시토크] 여중생 성인 스토리텔러
책상 앞에 앉아 고개를 한쪽으로 약간 꼬고 있자면 주먹이 날아올 것 같아 고개를 바로 세운다. 학교 다닐 때 그런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나는 학교 다닐 때 못말리는 딴 생각쟁이였다. 그것도 스토리있는 이야기로만. 소재는 물론 연애와 로맨스였지만 하드한 성인물도 있었다. 직접 그림도 그려 연습장 한 권 분량의 성인 순정만화도 탄생했었다. 내가 직접 쓰고 그려 결말까지 낸 첫 작품 '파도'의 장황한 내용은 이렇다.
부모님 대신 집안을 꾸려가는 소녀가장 ‘은선’은 동생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혼자 서울에 올라와 자취를 하며 월급을 집에 보낸다. 대기업 사장 비서로 일하며 타고난 싹싹함과 정리정돈 능력으로 사장의 눈에 든다. 50대 홀아비 사장은 얼굴부터 몸매, 성격, 매력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은선을 눈여겨본다. 그 무렵 은선은 한 남자를 소개받았다. 그러나 50대 사장이 은선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안하며 가까이 접근하고, 은선은 동생들 학비 생각에 제안을 뿌리치기 어렵다. 또한 최근 소개받은 남자도 거부하기 어렵다. 은선에게 그만 아이가 생기고 경악한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 사건이 커지자 은선은 아이를 낳아 먼 어촌마을에 들어가 혼자 살아간다. 다행히(?) 아이의 아버지는 젊은 아들이었고, 그는 은선을 찾아 전국을 헤매 다니다 바닷가에서 극적으로 재회한다. 그리고 자신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는 자책을 하는 홀아비 사장은 외국으로 도망치듯 간다.
여기까지 마무리를 하였으나 이미 하이틴 로맨스와 각종 스토리에 매혹된 친구들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충고했다. 다시 그녀를 잊지 못한 50대 남자가 돌아오고 은선은 갈등하고, 아이 아빠에게 다른 여자가 접근해 살림을 차리게 하라고 했다. 급기야 5각, 6각 관계와 근친상간을 넣으며 이야기는 막장으로 치달았다. 물론 '파도'는 행복하게 마무리되었으나 각종 번외편이 남아있었다. 쉬는시간마다 짬짬이 작품 활동(?)을 하던 나는 한창 주인공이 두 남자와의 화끈한 연애에 갈등하며 섹시한 장면을 연출하다가 국사선생님에게 걸려 혼이 날 뻔도 했다. 그 때 정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 화끈한 장면의 주인공은 내 작품의 외전편이며, 주인공은 내 친구와 바로 그 국사 선생님이었으니까.
몇 년 뒤 내가 썼던 스토리가 영화로 나왔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를 놓고 씨름하는 내용, 완전한 팜므파탈인 여자가 두 남자 사이를 오가는 내용은 영화 '데미지'(루이 말 감독)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사실 약간의 버전만 다르게 됐을 뿐 내 친구들이 마무리하며 즐겨 썼던 그 내용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막장드라마와 그리 다를 바는 없지 않은가.
그 당시에 내 뒤통수를 때리고, 교무실에서 혼을 냈던 선생님들이 미래를 알아보는 예지력이 있었다면 그토록 혼내지는 않았을 것을. 하지만 누군들 한 사람의 미래가 쉬는 시간의 섹시한 상상력과 수업시간 중 딴 생각 하는 버릇으로 가꿔지고 달라질 줄 알았겠는가. 그 때 썼던 그 요란한 성인물이 유명한 유럽의 감독에게 어떠한 나비효과를 일으켰는지, 소재들이 돌고 돌아 드라마 작가들의 머릿 속으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막장의 창작 원조는 나였다고 할 수 있다.
이영미는?
만화 '아색기가' 스토리 작가이자 '란제리스타일북' 저자, 성교육 강사, 성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