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순간이지만 포기의 여파는 평생이다.” “1%의 희망만 있다면 달릴 수 있다.”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은 말도 참 잘한다. 화술이 워낙 좋아 ESPY 시상식,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의 호스트로 초대받을 정도였다. 기자가 가장 재미있게 본 ESPY 시상식도 암스트롱이 호스트로 나섰을 때다. 의외로 독설가였다. 그가 남긴 명언은 수없이 많다. 본 칼럼의 첫 두 문장은 기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그의 명언이다. 암을 극복한 사나이라 더욱 와닿았다.
암스트롱이 지난 1월 현역 은퇴를 선언했지만 그는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물론 그로서 전혀 달가운 ‘화제’가 아니다. 과연 그가 현역 시절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느냐, 안했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뜨겁게 진행 중이다.
사람들은 왜 암스트롱이란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그것은 그가 고환암을 극복한 뒤 투르드프랑스에서 7연패의 위업을 달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투르드프랑스는 해발 3000m가 넘는 알프스 피레네 산악구간을 포함해 3500㎞를 3주 동안 달리는 지옥의 레이스다. 암을 이기고 사이클링까지 정복한 암스트롱. 인간승리의 표상으로 충분했다.
그런 믿음이 조금씩 깨지고 있다. 얼마 전 CBS 시사프로 ‘60미니츠’에서 그의 전 팀 동료 타일러 해밀턴은 “암스트롱은 스테로이드로 만들어진 선수”라고 주장했다. 그는 암스트롱이 고환암을 극복하고 난 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해지고 빨라졌다고 말했다.
이외 플로이드 랜디스, 스티븐 소트, 프랭키 앤드루, 조지 힌카피 등 그의 전 팀동료들이 줄줄이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 가운데 랜디스는 스테로이드 양성반응으로 투르드프랑스 우승이 박탈됐다.
해밀턴은 과거 암스트롱과 함께 소형비행기를 타고 스페인으로 가는 도중 미리 뽑아놨던 자신들의 혈액을 재투입하는 이른바 혈액도핑을 해서 지구력을 향상시켰다고 밝혔다. 또 경기가 끝난 뒤 서로의 입에 남성호르몬약을 넣어주고 의사가 약들을 언제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알려주는 현장에 함께 있었다고 주장했다. 테스토스테론, EPO, 혈액 도핑 등이 암스트롱이 사용했던 금지약물이라면서.
힌카피는 암스트롱이 투르드프랑스를 7연패할 때 늘 함께 페달을 밟은 절친한 동료였는데 LA에서 열렸던 암스트롱 약물과 관련한 법원 청문회에서 배심원들에게 ”나와 암스트롱은 경기력향상촉진제를 복용했다”고 진술했다. 랜디스가 자신은 물론 과거 미국우체국팀(US Postal team)의 약물복용은 다반사였다고 털어놓았을 때 힌카피 역시 “17년이나 그런 짓을 했어도 아무도 그게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게 나를 괴롭히고 있다”고 실토했다.암스트롱은 이들의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돈을 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깎아내리려 한다며 이들을 거짓말쟁이로 매도했다. 정부의 집중 조사를 받고 있는 이들이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바로 철창행이다. 암스트롱이 스테로이드 사용자라고 주장해 금전적인 이득을 본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해멀턴은 당초 암스트롱 스테로이드 복용여부에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하지만 연방대배심 앞에 증인으로 출두할 것을 명령받아 어쩔 수 없이 진술을 했다. 암스트롱은 최근 트위터를 통해 “지금까지 20년 이상 사이클을 타며 한 번도 스테로이드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고 양성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육상스타 매리언 존스는 한 번도 적발되지 않았지만 기소된 뒤 연방대배심 앞에서 “스테로이드 감지가 안되는 '크림'이라는 스테로이드를 사용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암스트롱은 스테로이드 사용 뿐 아니라 금지약물 불법거래와 사기 혐의로 곧 기소될 전망이다. 스테로이드가 가장 만연화된 종목이 바로 사이클링이다. 그런데 암스트롱은 깨끗했다? 그것도 투르드프랑스에서 스테로이드로 강화된 경쟁자들을 모두 제치고 7년 연속 우승했다? 도저히 믿기 힘들다.
로스앤젤레스=원용석 중앙일보USA 기자 [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