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구조가 어떻다는 것으로 상대의 등급을 메기는 것만큼 가치 없는 일도 없다. 그래도 부정할 수 없는 건 사랑해서라고 시작된 일이지만, 분명 정신적인 사랑과 몸이 주는 쾌감은 거리가 있으니 이리저리 좋았다 나빴다 가늠하게 된다.
운동선수들이라 그런가 춤추는 폼새도 격렬하고 게다가 용병들이라 꽤 이국적이었던 그 호텔바가 마치 자기네 활동무대라도 된 듯이 휘젓고 다녔다. 몇몇 여인들은 벌써 뜨거운 눈길을 받고 있고, 삼삼오오 테이블이 섞인다. 당시나 지금이나 그 놈의 영어 때문에 한국에 들어와 있는 서양남성들이 괘씸하게도 많은 한국여인들을 집적 대왔다. 사실 영어도 안되는 남미나 유럽 출신인줄도 모르고 헛물을 켜기도 했지만.
나중에 꽤 오랜 시간 실제로 뜨겁게 연애를 지속했던 커플들 중에는 본국의 부모님들까지 외국인 며느리감을 선보러 한국에 들어오기도 했었던 여인이 있었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사실 속된 말로 선수였는데 매번 그 서양남과의 섹스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임이 생길 정도였으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남자에겐 고소 감일 게 분명하다. 성인이 되면 성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관이 생긴다. 자신의 주변을 잘 관리하고 사회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 그녀를 정숙하지 못하다고 손가락질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었다. 그건 그녀의 취향일 뿐이니까. 그녀에게는 다양한 남자를 경험하고 싶었던 이유가 더 컸다.
말끔한 침실과 탁자 위에 금발의 여인과 찍은 사진, '애인이니?' 여자가 물었더니 남자는 그렇다고 했다.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다고 여자는 상상했다. 침대로 던져진 여자는 두 다리를 뻗은 채로 들어올려졌다. 그리고 갑자기 엇갈려 엑스자로 잡더니 삽입을 시도했다. 투박하고 강한 느낌이 아니라 칼로 찔리는 것처럼 예리하고 배꼽까지 닿을 것처럼 깊숙이 들어왔다. 정상위로 삽입한 채 여자를 돌려 무릎 위에 앉혔는데도 여전히 삽입한 채로 가능했다. 세상에 그렇게 길고 가는 남성은 본적이 없었다. 낯설고 신기한 생각이 든다. 여자는 도저히 그가 가진 길이 만큼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녀의 말을 빌자면 그에게는 자신이 10대 소녀처럼 느껴졌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궁합이 맞지 않는 남성일 뿐이었다. 지금도 그 남자 이야기를 하면 화들짝 손사래를 친다. 궁합에도 민족성이 작용했던 건지 그 이후로 서양 남자는 피해 다닌다고 했다. 딱히 애인도 없었는데 왠지 외도한 기분은 왜인지 모르겠다고.
누군가 성경험을 털어 놓으면 '나도 한번 해볼까?'하는 도전심을 갖는 사람과 그 자체를 간접경험으로 삼고 즐기는 사람이 있다. 누구나 전자처럼 행동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후자를 선택한다. 남이 어떤 경험을 했든 나는 나만의 성영역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이성적인 성인들의 행동이니까. 우린 그녀를 진정한 성인이라고 생각하며 좋은 경험담을 들려주어 지금까지도 감사하고 있다.
-최수진은?
불문학 전공, 전직 방송작가, '야한 요리 맛있는 수다' 의 저자. 성 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