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의 '신상털기'가 위험수위에 다다랐다. 신상털기란 네티즌이 특정인물의 개인정보를 조사해 인터넷에 유포하는 행위. 연예인 등 유명인이 주 타킷이었지만 요즘은 10대 여자폭주족 사건이나 지하철 패륜남 사건 등 비윤리적인 행동을 한 일반인까지 대상이 확대되고 있다. 네티즌은 '사회정의를 위한 행동'이라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신상털기 역시 범죄행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화번호에 가족관계, 심지어 성생활까지 신상털기는 생각보다 쉽다. 검색사이트 구글에 e메일주소와 이름만 치면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ID와 생년월일 정도는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이른바 '구글링'이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유행도 손 쉬워진 신상털기에 한 몫했다.
일단 신상털기가 시작되면 학교부터 집주소, 심지어 휴대전화번호까지 공개된다. 최근 부모를 욕했다는 이유로 친구를 때리고 옷을 발가벗겨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려 공분을 샀던 10대 여자폭주족은 술집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과 업소 이름 및 출신학교까지 밝혀졌다. 뿐만 아니다. 미니홈피에 올려놓은 개인적인 성생활까지 유포됐다. 네티즌들이 이 정도 정보를 알아내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에 불과했다.
신상털기가 이뤄지면 쉽게 그치지 않는다. 10대 여자폭주족은 '3년 전 일이며 14개월간 소년원에 갔다왔다'고 해명했지만 네티즌은 거짓말이라며 신상털기를 계속 했다.
신상털기가 시작되면 허위정보가 퍼지더라도 막기 어렵다. 실제로 지난 6월 지하철 안에서 젊은 남성이 옆에 앉은 노인에게 욕설을 하는 동영상이 공개됐을 때 네티즌은 신상털기에 돌입해 남성이 서울 소재 H대학교 기계공학과 재학생이라고 폭로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학교측은 "학교의 이미지가 실추됐다"며 최초 유포자를 찾아내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해병대 해안초소 총기난사 사건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이어졌다. 가해자와 같은 이름을 가진 해병대원들이 피해를 봤다. 특히 김상병과 이름·근무지·계급까지 같은 한 해병대원은 미니홈피가 네티즌의 욕설로 쑥대밭이 됐다. 지난해 30대 여교사가 중학생 제자와 성관계를 가진 사건에선 사건과 관계가 없는 가족들의 신상이 털려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다.
네티즌 '정의의 사도'라고 착각네티즌이 신상털기를 하는 이유는 '재미삼아', 또는 '남들이 다 하니깐', '나쁜 놈들인데 어때' 등등이다. 그러나 신상털기는 엄연한 범죄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제1항에서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서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비방'이 목적이 아닌 '별생각 없이'라고 말하면 대부분 기소유예나 약한 벌금형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상털기로 또 다른 피해자가 양상되는 만큼 자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이종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일반인 신상털기는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의 충돌"이라며 "도덕적으로 비난받을만한 사람이더라도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또 이윤호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네티즌들이 공명심에 사로잡혀 '정의의 사도'라고 착각해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역시 또 다른 범죄이자 폭력이라는 얘기다.
김학정 기자 [jungtim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