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으로 얼룩진 K-리그. 그래도 누군가에겐 꿈의 무대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최초의 한국인 골키퍼 유재훈(28·페르시푸라 자야푸라)을 14일 문수 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났다. 인도네시아 리그 휴식기를 맞아 잠시 귀국한 그는 “다시 K-리그 무대에 서는 것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그는 2006년 대전에 입단했지만 최은성(40)의 빛에 가려 4시즌 동안 4경기 출전에 그친 채 K-리그를 떠나야 했다. "대전을 떠난 이후 K-리그 경기를 본 것은 처음"이라는 그는 "아내에게 프로포즈는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하고, 결혼식은 울산 문수 경기장에서 했다"며 “K-리그는 그의 삶의 일부였다”고 설명했다.
동네축구로 시작한 축구축구를 시작한 계기부터 유별났다. "축구가 마냥 좋았다"는 유재훈. 그러나 그가 다니던 염포초에는 축구부가 없었다. 유재훈은 6학년 때 직접 공 좀 찬다는 친구를 모아 축구협회가 주최하는 대회에 나갈 준비를 했다. 감독이 없어 수위아저씨를 섭외했다. 어렵게 대회를 준비하던 중 골키퍼를 하기로 했던 친구가 다쳤다.
그는 "원래는 공격수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애들을 모은 책임감도 있고 해서 골키퍼를 봤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첫 경기부터 전국구 강팀으로 꼽히는 옥동초와 만났다. 오범석(27·수원)이 뛰던 팀이다.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았다.
그도 여러 차례 위험한 기회를 막아내며 선전했다. 결과는 2-4패배였다. 유재훈은 "정식 축구부를 상대로 경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이 대회에서 그의 활약을 지켜본 지도자가 있었다. 당시 울산 학성중에서 코치를 하고 있던 김종필(44) 현 동국대 감독이었다.
유재훈은 "김종필 코치님이 정식 축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중학교에 가면서 처음 정식축구를 배웠다. 당시 내 실력이 너무 형편 없어 3학년 선배가 '얘는 도저히 못 가르치겠다'고 코치님께 말했다고 하더라.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는 특유의 끈기로 축구를 배웠고 2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었다. 그리고 그해 전국대회에서 학성중을 정상에 올려놨다. 이후 학성고와 울산대를 거치며 탄탄대로를 달렸고, 2006년 우선지명으로 대전 시티즌에 입단했다.
꿈을 다 펼치지 못한 K-리그 경험대전에서 프로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그의 경쟁자는 대전의 수호천왕 최은성(40)이었다. 유재훈은 4년 내내 최은성에게 밀렸다. 한 에이전트가 그에게 좋은 계약 조건으로 대구에 넣어주겠다고 설득했다. 주전으로 뛰고 싶던 유재훈은 아내 배정현(29) 씨와 함께 살던 대전의 집도 처분했다.
대구로 옮겨갈 준비도 마쳤다. 그러나 계약은 마무리 시점에서 깨졌다. 에이전트는 이후 연락을 딱 끊었다. 유재훈은 "막막했다. 집도 잃고 팀도 잃었다. 도와주겠다던 에이전트들이 있었지만 골키퍼라 이적이 쉽지 않아 결국 다 떠났다"고 기억했다.
공장에서 일하며 키운 주전의 꿈유재훈은 고향 울산으로 돌아갔다. 거기서 자동차의 배기통을 만드는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해 돈을 벌었다. K-리그에 대한 꿈도 포기하지 않았다.
일은 고됐지만 밤에는 축구 훈련을 꾸준히 했다. 그는 "아내가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계속 도전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줬다"고 했다. 2010년 7월 기회가 왔다. 인도네시아에서 뛰는 선배가 외국인 용병을 선발한다고 그를 부른 것이다.
40명이 모인 외국인 선발전에서 그는 돋보였다. 세 팀이 그에게 관심을 보였고 우여곡절 끝에 페르시푸라로 이적했다. 그리고 한 시즌 만에 유재훈은 인도네시아리그 최고의 골키퍼가 됐다. 그는 2010~2011시즌 아시아 선수로는 유일하게 인도네시아 슈퍼리그 올스타에 뽑혔다.
소속팀 페르시푸라는 리그 최소 실점(23점)으로 챔피언이 됐다. 유재훈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한국팀과 상대하고 싶어 이를 악물고 뛰었다"며 인도네시아에서 첫 시즌을 떠올렸다. 내년까지 페르시프라에서 뛴다면 챔피언스리그에서 K-리그 팀과 맞대결하게 된다.
울산=김민규 기자 [gangaet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