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맞은 대학가는 이사시즌이다. 지방 학생들이 내려가면서 빈 방이 많이 나와서다. 그러나 월세방을 구하는 대학생들은 울상이다. 비싼 월세도 부담이지만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월세방 때문이다. 손바닥 만한 크기에 낮에도 햇빛이 들지 않고 곰팡이가 피어있는 것은 예사다. 하지만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은 대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쓰레기장 같은 월세방에 들어가고 있다.
대학생들 ‘돼지우리 월세방’에 울분 서울 소재 대학가에서 방을 구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만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한 번에 현금으로 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대학생들은 주로 보증금 500만원대에 월세 40만원대의 집을 찾는다. 500만원도 한 학기 등록금과 맞먹는 액수지만 사람이 살만한 집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방 같지 않은 방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 가격대의 방들은 대부분 좁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한 원룸은 혼자 쓰는 옥탑방을 3등분했다. 침대와 책상을 놓으면 사람이 움직일 공간이 거의 없다. 샤워장과 같이 쓰는 화장실은 여자 성인 한 명이 누운 정도의 크기로 그야말로 코딱지만하다. 이 지역의 '분리형 원룸'이라고 하는 곳은 한 사람이 살아야 할 공간을 억지로 나눈 것에 불과하다. 화양동 인근 월세방을 둘러 본 대학생 김모(21)씨는 “돼지우리 같다”고 말했다.
좁고 숨막히고 곰팡이까지 월세를 받기 위해 억지로 만든 기형적인 원룸도 많다. 마포구 염리동의 한 원룸은 주택과 벽돌담의 작은 틈을 활용해 슬레이트로 방을 만들었다. 이화여대 근처에 방을 구하고 있는 한채영(25)씨는 "방을 구경하기 위해 문을 열자마자 가득찬 열기 때문에 숨이 막혔다. 환기가 잘 안 돼 악취도 심하게 났다"며 손사래를 쳤다.
성북구 안암동의 한 월세방은 집 밖에 있는 창고를 개조했다. 이곳에서 몇 개월 살았다는 서모(25)씨는 "화장실을 가려면 밖으로 나와 본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러야 한다. 그러다 보니 샤워 후나 새벽에 화장실에 다녀올 때는 누가 방에 들어와 있을까봐 무서웠다"고 말했다.
장마철이나 겨울에 곰팡이와 사투를 펼쳐야 하는 월세방도 즐비하다. 최근 ID 'tj****'이라는 네티즌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지식인에 '전 입주자가 곰팡이가 없다고 해서 들어갔지만 곰팡이가 생겼다. 이번에 비가 오면서 이틀에 한 번 벽을 청소했다. 천창에도 피고 진심으로 못살겠다. 계약파기하고 보증금받고 나갈 수 있나요'라고 하소연했다.
곰팡이가 끊이지 않는 월세방은 곰팡이가 핀 벽을 닦아내지 않고 도배를 새로 하는 경우가 많다. 채광과 단열이 잘 되지 않는 원룸에는 새 벽지를 뚫고 곰팡이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대학가 원룸에서 수 개월째 곰팡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김모(27)씨는 "곰팡이 냄새 때문에 미칠 지경이다. 벽지를 뜯어내야 하는데 집주인은 나 몰라라 한다"고 말했다.
'이보다 싼 집 없다' 몰상식한 집주인들이렇게 형편없는 월세방을 내놓으면서 집주인들은 당당하다. '다른 데 둘러봐도 이렇게 싼 집은 구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 월세방을 구하고 있는 임모(21)씨는 "대학가 원룸들이 값에 비해 너무 엉망이다. 이런 집을 학생들에게 살라고 내놓는 주인들의 머릿속이 궁금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신촌지역 대학생들의 주거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학생단체 '민달팽이 유니온'의 활동가 이연상(23)씨는 "공급이 고정된 상태에서 수요가 늘어나면서 '쓰레기 원룸'도 비싸게 나오고 있다"며 "여기에 일부 집주인의 월세 담합 등 비양심적인 태도도 한 몫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싼값의 임대주택을 제공하거나 대학교에서 기숙사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손예술 기자 [meister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