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희 감독과의 호흡은 하드보일드한 액션에서 진가를 발했다.
1960년대에 가장 어려운 촬영 분야가 액션이었다. 조금도 보태지 않고, 러닝타임 1분 20초의 액션을 만들어내려면 밤새도록 찍어야만 했다. 외국은 풀샷 카메라, 클로즈업 카메라, 좌우의 카메라로 동시에 촬영했다. 그러나 우리는 카메라 하나 가지고 찍으니 배우가 얼마나 고달픈지 몰랐다. 여러 각도의 움직임을 일일이 재현해야 했다. 게다가 치고, 박는 신은 주로 밤 촬영 분이다. 이 감독과 나는 별 말 없이 '흑맥'(65) '원점'(67) '휴일'(68)의 고된 액션 신을 소화했다.
'흑맥'에서 주인공 독수리가 맥주홀에서 싸우는 장면이 있었다. 카메라는 맥주홀 스탠드를 걸치고 홀 전체를 비추도록 설치됐다. 이 감독은 내가 여러 번 얻어맞다가 스탠드에 세워진 맥주병들을 팔로 치면서 쓰러지는 장면을 요구했다. 내 머리가 카메라 앞에 쳐박히는 연출을 의도했다. 얼마나 열심히 촬영했던지, 나 역시 정신이 없었다. 이 감독의 "컷" 소리에 눈을 떴다. 팔에 맞아 깨진 맥주병의 삐죽삐죽한 날이 내 코 바로 앞에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조금만 더 고개를 숙였더라면 영락없이 얼굴이 찢겼을 것이다. 열중하고 집중력을 가지면 하늘이 상처 하나 안나게 도와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됐다.
'흑맥' 이후 2년만에 이 감독·문희와 다시 뭉친 '원점'은 신성일 액션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이소룡이 탑에서 압둘 자바와 대결을 벌이는 영화 '사망유희'를 대단한 액션으로 꼽는 분들도 많겠지만, 난 '원점'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원점'에서 석구(신성일)는 자신의 조직 보스에 의해 제거 대상이 된다. 밤의 여인 선(문희) 역시 보스의 암살지시를 받고 석구를 설악산으로 유인한다. 난 석구가 조직원들과 사생결단의 혈투를 벌이는 장면을 곳곳에서 촬영했다. 밤의 한기 속에서 충무로 대한극장 사무실 3층부터 지하 1층까지 4개층을 결투 무대로 삼았다. 때리고, 맞고, 굴러떨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이 감독은 매층마다 카메라 앵글과 라이트를 바꾸어 분위기를 달리했다. 이소룡이 '사망유희'에서 상대를 깨면서 올라갔다면, 나는 적을 쓰러뜨리면서 아래로 향했다. 대역도 없고, 카메라는 한 대뿐. 모든 걸 나 혼자 해결해야 했다. 이 감독이 배우를 아끼는 마음은 대단했다. 본인이 직접 카메라 앞에서 실연해주기도 한다.
"신짱, 괜찮아?"
여섯 살 위의 이 감독은 나를 '신짱'이라 불렀다. 운동으로 단련된 내 몸은 쇳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아주 멀쩡했다. 계단에서 그렇게 굴러 떨어지는데도 상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기적이 아닌가 싶다. 한숨 돌려세운 이 감독은 빙그레 웃으며 다시 카메라 앞으로 돌아갔다. 촬영이 끝났을 땐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 감독은 단 한 컷도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는 감독이었다. 이 감독에게 'OK' 사인을 받으면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즐겁게 일했기에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짜증 나면 사고가 따라온다. 64년 '욕망의 결산' 때 내가 부산 태종대에서 당한 사고를 생각해보라. 가장 싫어하는 상황 속에 나를 밀어넣었다가 배우 생활을 끝마칠 뻔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새벽 거리로 나섰다. 상쾌했다. 내 인사법은 간단했다.
"짱구형, 바이 바이."
'짱구형'은 유달리 머리가 큰 이 감독에게 내가 지어준 애정 어린 별명이었다. 이 감독은 손을 들어 간단히 인사하고 새벽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정리=장상용 기자 [enise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