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5·남아공)는 전혀 싫은 기색도, 불편한 기색도 내보이지 않았다. 기념촬영을 위해 기꺼이 무릎까지 꿇었다. 그는 일반인과 겨루는 이번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진심으로 즐기는 모습이었다.
피스토리우스는 20일 오후 10시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그는 두바이에서 아랍에미리트 항공편을 이용해 오후 5시쯤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곧바로 서울역으로 이동, KTX로 대구에 내려왔다. 족히 20시간이 넘는 장거리 이동에 피곤할 법도 했다. 그러나 피스토리우스는 환영을 나온 시민들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동대구역 출구로 환영나온 30여명의 시민 서포터스와 취재진은 처음엔 피스토리우스를 잘 알아채지 못했다. 여러 명의 외국인 속에서 두 손을 들고 화답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피스토리우스의 두 다리는 언뜻 보기엔 일반인과 차이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피부색과 같은 색깔의 의족을 이용해 아무런 불편 없이 걸어나왔다. 트랙에서 착용하는 탄소 섬유로 된 J자 모양의 의족 '플렉스-풋 치타'는 커다란 배낭 속에 챙겨왔다.
그는 팬들과 단체 기념촬영을 위해 자세를 조금만 낮춰달라는 요구에 바로 무릎을 꿇었다. 의족을 착용한 그가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별로 불편하지 않다는 듯 요구에 응했다. 의족과 허벅지를 연결한 부위에는 보호대를 덧대고 있었다.
반바지 차림이라 보호대를 댄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그러나 피스토리우스는 전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위축되지도 않았다. 종아리뼈가 없이 태어난 피스토리우스는 생후 11개월 때 두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은 이후 줄곧 의족을 착용한 채 생활했다.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는 피스토리우스는 "한국 팬들의 뜨거운 성원에 기쁘고 흥분된다"며 "첫 메이저대회에 출전한 만큼 소중한 경험을 쌓겠다"고 말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한국 여행을 하고 문화도 배우고 싶다"며 여유를 보였다.
피스토리우스는 이번 대회 남자 400m와 1600m 계주에 출전한다. 그는 "팀원들의 컨디션이 좋기 때문에 나 또한 최선을 다해 팀에 일조하겠다. 400m에서는 더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말했다. '블레이드 러너'라는 별명에 대해서는 "영국에서 제일 처음 별명을 붙여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선수라면 누구든 별명을 얻게 된다. 부정적인 뜻만 아니라면 괜찮다. 재미있고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