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일이 남주인공을 맡은 영화 '백발백중'(1966년)에 출연한 여배우들 고은아·남정임·전양자·문희(사진 오른쪽부터). 남정임의 또렷한 외모가 두드러진다. 신성일이 남주인공을 맡은 영화 '백발백중'(1966년)에 출연한 여배우들 고은아·남정임·전양자·문희(사진 오른쪽부터). 남정임의 또렷한 외모가 두드러진다.
1969년 겨울, 배우인지 가이드인지 모를 정도로 남정임을 보호하다 서울로 돌아왔다. 지나치게 책임감에 사로잡혀 여행의 흥취라고는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했다.
공항엔 남정임의 어머니가 마중나와 있었다. 나는 "아무 일 없이 인계합니다"라며 남정임을 어머니의 품에 안겨주었다. 그제서야 한숨을 놓을 수 있었다. '설원의 정'의 제작자이자 돈많은 재일교포 니시야마도 남정임을 어떻게 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71년 무렵 어느날 남정임의 약혼 발표가 터져나왔다. 임방광이라는 재일교포와 결혼한다는 것이었다. 나로선 아쉬웠다. 그렇게 공들여 니시야마로부터 보호를 했는데 결국 재일교포와 결혼하다니…. 남정임은 결혼하면서 일본으로 떠나 아예 종적을 감춰버렸다.
남정임은 신인 시절부터 자기 의사를 주저없이 밝히는 성격이었다. 실제 생활이든, 스크린이든 감정 표현이 솔직했다. 당돌하다고까지 할 수 있었다. 꾹 참고 넘어가는 다른 여배우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남정임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 하나. 어느 날 한 제작부장이 스케줄 문제로 남정임의 집을 찾아갔다. 그 과정에서 트러블이 생겼는데, 남정임은 그 자리에서 냅다 자신의 하이힐을 벗어 제작부장의 이마를 갈겼다고 한다. 66년작 '백발백중'의 스틸 사진을 보면 외모에서부터 그런 성격이 확 드러난다.
남정임의 결혼 후 일본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76년 무렵 제1회 도쿄국제영화제에 초청 받은 정진우 감독은 시부야의 NHK 방송국 1㎞ 거리에 자리한 한 불고기집을 찾아갔다. 남정임이 결혼한 재일교포 집안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정 감독은 66년 나와 남정임 주연의 '악인시대' '초연' 등을 합작하며 남정임을 최고의 배우로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남정임은 식당에서 발다닥에 불이 나게 뛰어다니고, 시아버지는 그녀를 다그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재일교포나 재미교포는 돈이 많고, 대단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허상이었다. 김수용 감독을 대동한 정 감독은 그 날 숙소로 돌아와 울었다고 한다. 자신들이 공들여 키운 여배우가 '저 꼴이 무엇인가'하고.
정 감독은 그 다음 날 오후 2시에 다시 찾아가 남정임을 만났다. 남편과의 관계도 좋은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남정임은 정 감독의 설득으로 이혼을 하고 한 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 해 정 감독이 운영하는 우진필름에서 정소영 감독의 작품 '나는 고백한다'로 재기했다.
한국 생활 땐 현 대한도시가스 고문인 노승주가 그녀를 따라다녔다. 정 감독은 노승주를 불러 "너, 남정임에게 또 다시 상처 주면 죽어"라고 했고, 노승주는 "남정임을 사랑하니 결혼하겠다"고 다짐했다 한다. 78년 그녀는 노승주와 재혼했다.
나는 이미 남정임이 노승주와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있던 터였다. 노승주는 나와 절친한 김동건 아나운서를 깍듯하게 형님으로 부르며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나와도 형·동생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사이였다. 어느날 첫번째 아이 돌잔치한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노승주·남정임 부부는 여러 분위기로 보아 내게 연락을 안할 수는 없었다. 오랫동안 못 만났던 아쉬움을 아기 돌잔치에서 달랬다. 내가 알기로 그녀는 노승주와 잘 살았다.
92년엔 남정임이 유방암에 걸려 사망했다는 소식을 신문으로 접했다. 빈소에도 문상을 갔다. 4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그녀. 얼마나 내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지금도 남정임이 삿포로그랜드호텔 벽을 두드리던 소리를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