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는 마르고 심폐지구력 좋은 동아프리카인
동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의 지붕' 킬리만자로산(5895m)이 있다. 인근의 케냐와 탄자니아는 장거리에 강하다. 케냐와 인접한 에티오피아도 장거리에 강한데, 국토의 4분의 1이 해발 2000m이상의 고지대다. 1만m에서 세계선수권 5연패를 노린 베켈레도 에티오피아 사람이다. 베켈레가 기권한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브라힘 제일란도 에티오피아인이다.
전설적인 마라톤 영웅 맨발의 아베베 역시 에티오피아 인이다. 또 케냐는 역대 세계육상선수권에서 미국(120개)과 러시아(37개)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31개의 금메달을 땄다. 케냐의 대부분 메달은 장거리 종목에서 나왔다. 이번 대회에서도 여자 마라톤에서 케냐 선수들이 금·은·동을 휩쓰는 파란을 일으켰다.
같은 아프리카 대륙에 살지만 이들의 체질과 기질은 서아프리카인과는 완전히 다르다.
동아프리카에는 작고 마른 부시먼족이 원주민으로 살았다. 여기에 아라비아인과 유럽인이 침략하며 들어왔다. 대부분의 원주민은 고산지대로 밀려났다. 김 교수는 "동아프리카인들은 지근이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지근은 속근보다 작아 마른 체형의 선수가 많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고산지대에 살며 심폐지구력이 강해지는 환경적 요인이 더해져 케냐와 에티오피아를 장거리 강국이 됐고, 끊임없이 새로운 유망주가 태어난다.
◇투척 종목은 순간 파워 쎈 동·북유럽인
투포환이나 해머·창던지기 같은 투척 종목은 동유럽과 북유럽인이 강하다. 슬라브족에 뿌리를 둔 러시아·헝가리나 게르만족인 독일 같이 덩치가 큰 민족 국가가 잘했다. 김 교수는 "이들 인종은 순간적으로 내는 파워가 강하다. 단거리는 이동하는 파워가 중요한 반면 투척종목에서는 체중을 실어 순간 뿜어내는 힘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 소련 같이 스포츠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까지 더해져 동구권이 강자로 자리매김 했다"고 덧붙였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해머던지기에서 우승한 일본인 무로후시 고지(37)도 유전자의 힘을 입증한 선수다. 그의 아버지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일본선수권을 12번, 아시안게임에서 5연속 우승을 차지한 해머던지기 선수였다.
그러나 시게노부는 세계의 벽은 넘지 못했다. 시게노부는 루마니아 창던지기 선수 세라피나 모리츠와 결혼해 고지를 낳았다. 일본인의 기술에 동유럽인의 유전자를 얻은 고지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세계 정상에 오르더니, 대구에서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동아시아인도 가능성 있다
한국과 일본·중국에 거주하는 황인종은 신체적으로 큰 특색은 없다. 특별히 육상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 김 교수는 "아시아인은 전통적으로 지구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장거리 종목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동아시아 3국은 그나마 마라톤에서 강점을 보였다. 그렇다고 다른 종목을 포기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단거리와 도약 등 유전적 요소가 큰 변수가 되는 종목을 제외하고는 아시아인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체형이 점점 서구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도 긍정적이다. 뿌리가 같지만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의 평균신장은 15cm 이상 차이가 난다. 유전적 요인뿐 아니라 환경적 요인에 따라 인종이 달라지는 좋은 사례다.
체격이 커지면서 육상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중국의 '황색탄환' 류샹(28)이 대표적인 예다. 류샹은 중국 경제의 발전과 함께 태어난 육상 천재다. 김 교수는 "경제 성장에 따라 영양 섭취가 좋아지고 체격이 커지면서 아시아에서도 파워풀한 선수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한국 수영에서 박태환이라는 괴물이 혜성처럼 등장한 것처럼, 앞으로 육상에서도 새로운 스타가 탄생할 수 있다.
근면하고 성실한 자세와 목표를 세우면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도전하는 불굴의 정신력도 아시아인들의 뛰어난 점이다.
정리=김민규 [gangaeto@joongang.co.kr]
▶ [대구육상 ①] 단거리는 흑인, 투척은 백인 강세...이유는 DNA?▶ [대구육상 ②] 동아시아인은 지구력이 장점...‘장거리에 유리’▶ [대구육상 ③] ‘무조건 45도는 오산’ 투척종목 각도의 비밀▶ [대구육상 ④] ‘이번에도?’ 미국, 5회 연속 종합 우승 달성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