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박정권(30)의 아내 김은미(30) 씨는 가을이 되면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김 씨는 한때 남편에게 거침없는 비판을 늘어놓았던 '일침(一鍼) 여사'였다.
하지만 이제는 포스트시즌 출전을 앞둔 박정권에게 조언대신 격려를 한다. 박정권은 12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4차전을 앞두고 "아내가 '편하게 하고 오라'고 하더라. 아주 나긋나긋해졌다. 방법을 바꾼 모양이다"라며 웃었다.
포스트시즌에 돌입하면 박정권은 '국내 최고 타자'가 된다. 그는 2009년 두산과 플레이오프, 2010년 삼성과 한국시리즈에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2011년 가을잔치의 첫 관문, 준PO서도 박정권은 '비룡'의 날개가 됐다. 8일 1차전서 3타수 무안타에 그쳤던 그는 9일 2타수 1안타 4볼넷으로 활약했다. 11일 3차전에서는 3타수 3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4차전에서도 박정권은 절정의 타격감을 과시했다. 박정권은 2회초 선두타자로 나서 2루쪽 강습 내야안타로 출루했다. 9일 2차전 첫 타석부터 이어온 연타석 출루가 10개로 늘었다. 이는 역대 포스트시즌 최다출루 기록(종전 두산 김현수 9연타석)이다.
'개인기록'을 달성한 그는 다음 타석에서 팀에 타점을 안겼다. 2-0으로 앞선 3회초 1사 2루, 박정권은 KIA 윤석민의 6구째를 통타해 좌중간 2루타를 터트렸다. 최정이 홈을 밟으며 스코어는 3-0이 됐다. 박정권을 막지못한 KIA 에이스 윤석민은 마운드를 내려갔다. 박정권은 4-0이던 5회 무사 1·3루서 2루땅볼로 타점을 추가했다. 사실상 승부는 여기서 끝이 났다.
박정권은 이번 준PO서 12타수 6안타(타율 0.500) 2타점을 기록했다. 시리즈 MVP는 정근우(29)에게 넘겨줬지만, 가을사나이의 존재감만큼은 확실히 심어줬다.
매년 가을, 박정권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마다 아내 김 씨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힘겨웠던 시절, 자신의 곁을 지켜 준 부인에게 감사 인사를 꼭 전하고 싶었다.
2008년 6월 28일 인천 한화전에서 1루수로 나선 박정권은 한화 외국인선수 클락과 충돌해 정강이 뼈가 세 군데나 부러졌다. 3달 동안 깁스를 했다. 박정권은 "그때는 참 힘들었다. 깁스한 상태에서도 술을 많이 마셨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그의 곁에는 부인 김은미씨가 있었다. 2006년 겨울, 동료의 소개로 만난 아역 탤런트 출신의 김 씨는 매일같이 병원을 찾았다. 김씨의 손길은 따듯했지만 "주저앉지 마라. 스스로 일어나라"는 아픈 충고도 서슴치 않았다. 2008년 12월 결혼을 한 뒤에는 야구 전문용어까지 섞어가며 충고의 수위를 높였다. 올 해 정규시즌에도 박정권이 부진할 때 김 씨는 조언을 했다.
그러나 준PO에선 "편하게 하고 오라"는 말만 했다. 김 씨는 이제 남편의 의욕을 살리는 방법을 바꿨다. 18개월된 딸 예서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다. 박정권은 "매년 가을, 신문에 아내의 이름이 나왔다. 이제는 딸 이름이 많이 나올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하남직 기자 [jiks79@joongang.co.kr]
사진=이호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