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김성근 SK 감독과 조범현 KIA 감독의 퇴진으로 NC 김경문 감독은 한꺼번에 3가지 타이틀을 획득하게 됐다. 첫째는 프로야구 현역 최다경기 감독(960경기), 둘째는 프로야구 현역 최다승 감독(512승), 그리고 셋째로는 프로야구 현역 최고령 감독(1958년생)이다. 김 감독과 동갑인 김시진 넥센 감독도 '졸지에' 현역 최고령 감독으로 등록됐다.
한때 김경문 감독이 40대 젊은 감독의 대표주자로 꼽힌 것을 생각하면 이런 타이틀은 격세지감이다. 프로야구에서 사령탑의 세대교체가 그만큼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단 얘기다. 2000년대 들어 '젊은 감독', 초보 감독 선임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각 구단 사령탑의 평균 연령이 갈 수록 낮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현역 최고령 선수보다 불과 한 살 많은 신임 감독까지 나왔다.
젊은 감독으로의 교체는 곧 젊은 코치진으로의 교체를 뜻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프로야구에서 젊은 감독이 새로 선임되면, 마치 검찰 인사이동 때와 흡사한 광경이 벌어진다. 새 검찰총장보다 윗 기수들이 줄줄이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나듯, 새 감독보다 선배인 코치들이 한꺼번에 옷을 벗는 현상이다. 실제 최근 감독을 바꾼 몇몇 구단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차이가 있다면 검찰은 그만두고 나면 변호사라는 매력적인 대안이 마련되어 있지만, 야구 코치들에게는 다른 갈 곳이 없다는 점이다. 한창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뛰고 뒹굴며 풍부한 '경험'을 활용해야 할 나이의 코치들이, 졸지에 원로 아닌 '야구 원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젊은 코치들은 의욕과 열정은 있지만 코칭의 '노하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야구 관계자들이 "요즘 프로야구에 코치난이 심각하다"며 입을 모으는 이유다.
또 하나. 젊은 감독 선호는 수많은 '전 감독'을 양산한다. 프로야구에서는 '한번 감독은 영원한 감독'으로 통한다. 일단 한번 감독 자리에 올라본 사람은 감독만 고집하고, 감독보다 낮은 직급인 코치는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다. 문제는 '하늘이 점지해 주는' 프로야구 감독 자리를 다시 얻는 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는 것. 선동열이나 김경문 감독처럼 성공적인 경력을 쌓는다면 모를까, 실패한 감독에게는 -아무리 나이가 젊어도- 좀처럼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아까운 인재들이 팀 한번 잘못 맡았다가 재기 불능의 '전 감독'으로 전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감독직을 그만둔 인사가 곧바로 다른 팀 코치로 복귀하는 경우가 흔한 미국 메이저리그와는 전혀 딴판이다.
"베테랑 코치들이 가진 풍부한 경험이 사장되고 있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이태일 NC 다이노스 대표의 말이다. "그분들이 오랫동안 코치를 하면서 얻은 노하우와 지식은 단시일에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따지고 보면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닙니다. 아직 충분히 운동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뛸 수 있고, 젊은 선수들과 대화도 통하는 분들이거든요."
실제 NC 다이노스는 초대 코칭스태프 진용을 구성하며 백전노장 코치들의 경험을 중요시했다. 타격 쪽을 맡은 박승호 수석코치와 김광림 코치, 최근 SK 박희수와 윤희상의 활약에 흐뭇한 최일언 투수코치, 롯데에서 장수 코치로 활동한 박영태 수비코치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여기에 전준호, 김상엽 등 '젊은 피'를 수혈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일본 오릭스에서 합류한 김상엽 코치는 "경험 많은 코치님들이 많아서 나도 배우면서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베테랑 코치의 존재가 선수들은 물론 동료 코치들에게도 살아 있는 공부가 되는 셈이다.
변화의 조짐은 NC 외에 다른 구단에서도 보인다. 최근 KIA 타이거즈는 선동열 감독을 선임하면서 이순철 MBC 스포츠 해설위원을 수석코치로 영입한다고 발표했다. 이순철 코치는 과거 '감독들의 무덤' LG 트윈스 감독을 맡았다가 사퇴한 뒤, 비상체제의 히어로즈에서 잠시 코치를 한 것 외에는 방송에만 전념해 왔다. 탁월한 해설자였던 그의 현장 복귀는 방송계 입장에서는 큰 손실이다. 하지만 화려한 성공과 쓰라린 실패를 모두 맛본 그의 경험과 풍부한 야구 지식이 KIA에 큰 힘이 될 것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감독으로 실패한 인사에게 코치로 재기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프로야구 풍토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이순철 코치 이전에는 양상문 해설위원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 감독'이 코치로 현장에 복귀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이 코치의 복귀를 계기로 '전 감독' 딱지를 달고 아까운 재능을 썩히는 인재들에게 보다 많은 '패자부활전'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지 기대된다.
신임 류중일 감독이 이끈 삼성은 다른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올 초 1964년생인 류 감독이 사령탑에 앉으면서, 기존의 류 감독보다 나이 많은 코치들이 대거 정리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삼성은 코칭스태프 구성을 큰 틀에서 계속 유지했고, 젊은 감독과 경험 많은 코치진은 서로를 존중하며 하나로 뭉쳐 정규시즌 우승을 이뤄냈다. 그런데 최근 삼성을 흉내내서 초보 감독을 선임한 몇몇 팀은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그들은 젊은 감독을 자리에 앉히고, 그보다 더 젊은 코치들을 그 밑에 배치한다. 초보 감독에 초보 코치진. 경험 많은 코치들은 죄다 팀을 떠난다. 그래놓고 '코치가 없다'고 푸념을 한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듯하다.
<야구라> 배지헌 (http://yagoo.tistory.com/)
* 위 기사는 프로야구 매니저에서 제공한 것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야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