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이 또 틀렸다. 경기 전에는 SK 타자들이 준플레이오프(PO)와 PO에서 보여준 상승세를 KS 1차전에서도 이어갈 것으로 봤다. 초반부터 점수를 뽑아내 삼성 마무리 오승환이 아예 나오지 못하게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결국 포스트시즌 9경기를 치르면서 쌓인 피로가 만만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달리 보면 그만큼 삼성 투수들의 공이 위력적이었다. 특히 오승환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최동원과 선동열을 합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마운드 위에서 무표정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얼굴부터 SK 타자들을 압도했다. 직구는 마치 대포알 같았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한 템포 빠른 투수 교체로 승리를 이끌었다. 2-0으로 리드를 잡자마자 5회초 선발 매티스를 내리고 차우찬을 올렸다. 8회초 2사 후에는 권혁이 박재상에게 안타를 맞자 곧바로 오승환을 등판시켰다.
1차전을 반드시 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초보 감독'답지 않은 노련함이기도 했다. PO에서 이만수 SK 감독대행과 양승호 롯데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류 감독도 즉흥적인 교체가 아닌 철저한 계산에 의해 예정된 수순으로 마운드를 운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투수를 과감하게 바꾼다는 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투수들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전임 선동열 감독을 보좌하면서 충분한 학습을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만수 SK 감독대행은 선발 고효준이 4회 1, 2루 위기를 맞았는데도 투수를 바꾸지 않았다. 곧바로 신명철에게 결승 2타점 2루타를 내줘 결과적으로는 패착이 됐다. 하지만 내가 감독이었어도 고효준을 교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고효준은 구위가 좋았고 자신감과 여유도 넘쳐 보였다.
SK는 수비에서도 아쉬운 장면을 몇 번 보여줬다. 6회말 2루수 정근우가 신명철의 내야 뜬공을 놓치고, 8회말에도 박석민의 타구를 좌익수 박재상이 떨어뜨렸다. 아무래도 준PO와 PO를 치르고 올라오다 보니 피로가 누적돼 집중력이 떨어진 결과로 해석된다.
하지만 SK에도 아직 희망은 충분히 남아 있다. 사상 최초 5년 연속 KS 진출을 이룬 팀 아닌가. 지금 SK 선수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과 투지다. 29년 전인 1982년 한국시리즈가 생각난다. OB는 삼성에 초반 1무1패로 뒤졌지만 3차전부터 4연승을 거두고 우승했다. 당시 허리 부상 중이었던 나는 3차전부터 구원 등판을 자청했다. 지난 겨울 혹독했던 훈련을 생각하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