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는 약물 청정지대'라고 자부했던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고개를 들 수 없게 됐다.
프로야구는 2007년부터 국내 프로스포츠 가운데 처음으로 도핑테스트를 실시했다. 지난해까지 금지약물 양성 반응을 나왔던 선수는 두 명. 삼성 루넬비스 에르난데스(2009년)와 KIA 리카르도 로드리게스(2010년)였다. 삼성 진갑용과 두산 박명환이 국제 대회에서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된 적은 있지만 이때는 KBO 차원의 검사 실시 전이었다.
그러나 파나마 야구월드컵(10월 1~15일) 대표선수인 두산 김재환이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가 사전 실시한 검사에서 남성호르몬 스테로이드 성분이 검출돼 KBO로부터 29일 10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도핑테스트 실시 뒤 국내 선수론 첫 적발 사례다. 두산 관계자는 "김재환이 9월초 개인적으로 이용하는 헬스클럽에서 알약을 받아 복용했다. 금지약물 성분이 포함됐는지는 몰랐다"고 밝혔다.
KADA는 올해 10월까지 총 13건·27명의 금지약물 복용을 적발했다. KADA 관계자는 약물 복용 유형에 대해 "크게 두 가지다. 몸을 만들기 위해 성분이 정확하지 않은 외국산 약품을 복용하다 적발되거나, 치료·보양 목적의 의약품·한약재에 금지 성분이 포함된 경우"라고 설명했다.
통상 '보충제'로 불리는 외국산 약품은 주로 헬스클럽 등에서 유통된다. 한 관계자는 "일부 사설 트레이너들은 스테로이드 계열 약물인지 알면서도 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오남용 실태는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프로구단 트레이너는 사견임을 전제로 "금지약물이 100% 사라졌다고는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로스포츠에서 연봉은 피라미드 구조다. 성공에 대한 갈망이 어느 직업군보다 크다. 20승과 수명 1년을 기꺼이 바꿀 투수가 많을 것이다.
특히 2군에 머물러 있는 선수라면 약물의 유혹에 쉽게 빠질 개연성이 높다. 하지만 KBO의 약물 검사는 사실상 1군에 한정돼 있다. 2군 선수에 대한 검사는 2009년 한 차례 실시했을 뿐이다. 심지어 징계도 2군 경기 출전에 대해선 조항이 없다. '검사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하지만 올해 KBO의 반도핑 관련 예산은 6000여 만원에 불과하다.
KBO는 그동안 "검사와 사전 교육으로 약물 복용 풍토가 사라졌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김재환의 해명을 100% 신뢰하더라도, 아직 금지약물에 대한 '교육'이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애당초 약물 복용은 '교육'으로는 막기 어렵다.
경제학자 J.C, 브래드버리는 '죄수의 딜레마' 모델을 이용한 분석에서 "선수 양심에 호소해서는 약물 남용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합의가 있다하더라도, 남을 속이는 선수가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력한 반 도핑 정책이 필요하다. KBO의 내년 예산에는 2군 도핑 관련 비용이 책정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