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양해를 구하고, 어려운 것만 골라 물었다. 고참들의 정신력 문제, 신임 감독에 대한 팬들의 의문, FA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와 2007년 있었던 빈볼 시비까지. 봉중근(LG·31)은 진지하게 질문에 답하고, 솔직한 마음이 팬들에게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진주에서 마무리 훈련 중인 후배들을 독려하며 재활에 매달리고 있다. 봉중근은 지난 6월 미국에서 왼쪽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 재활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뒤 구속이 회복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에 대한 준비는 하고 있는지.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회복 기간이 보통 1년 정도 걸린다. 아직 회복 기간이니 희망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같은 수술을 했던 오승환(삼성)이나 임창용(야쿠르트)의 경우, 구위를 회복하는데 1년 반에서 2년 정도 걸렸다.
나도 다음 시즌에 복귀하자마자 제 구속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구속이 마음만큼 올라오지 않는다면 제구력을 더 키워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구속도 올라올 거라고 믿고 있다."
- LG에선 5년차지만, 메이저리그 경력을 합치면 15년차다. 고참 입장에서 대답해 주면 좋겠다. 팬들이 LG 고참 선수들의 정신력 문제를 많이 지적한다. 연봉도 많이 받고 스타 대접을 받았던 고참들이 지난 9년 동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우리(고참들) 잘못이다. 개인 성적을 들여다보면 정말 훌륭한 선수들이 많다. 그런데도 9년 동안 팀이 성과를 내지 못한 건, 고참들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희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플레이가 많았다. 나 혼자만 잘 해서 이길 수 있는 게 아닌데 그 점을 간과했다. 후배들을 이끌고, 연패를 당했을 때 어떻게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하는지 그런 노하우들을 알면서도 나누지 못했다."
- 지난 주 팬들이 "LG가 우리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며 축제를 열었다. 신임 감독에 대한 팬들의 신뢰가 높지 않은데.
"죄송한 일이다. 미국에서 '팬들이 없으면 선수도 없다'고 배웠다. 팬들이 보러 와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경기를 하는 의미가 없다. 일부 팬들이 신임 감독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계신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문제는 내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구단에서 심사숙고해서 뽑은 감독님이고, 지금까지 훈련 과정에서 굉장히 훌륭한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젊은 분이라 선수들과 많이 소통하신다. 팬들께서도 믿어주셨으면 좋겠다."
- FA 1차 협상이 4명(조인성·송신영·이상열·이택근) 모두 결렬됐다.
"네 선수 모두 정말 필요한 선수들이다. 특히 (조)인성이 형이 고생 많이 했는데, 꼭 팀에 남아서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 선수도 구단도 조금씩 양보해서 좋은 성적 거두고, 기분 좋게 다시 연봉 이야기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올 시즌 수술을 마치고 귀국한 뒤 LG가 추락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봤다.
"잠실구장에 자주 갔다. 선수들이나 코칭스태프를 만나면 첫 마디로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모든 선수들에게 미안하지만 특히 어린 박현준과 임찬규, 그리고 시즌 내내 고생한 (조)인성이 형에게 미안하다. 바깥에서 보니 어린 선수들과 포수가 정말 고생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답답한 마음이었다."
- 지난해 시즌 초에 박종훈 전임 감독과 마찰이 있었다. 문책성으로 2군에 가기도 했는데.
"내가 무조건 잘못했다. 나를 더 강하게 키우려고 하셨던 거다. 에이스로서 수비수들이 100% 믿을 수 있도록 행동하라고 지적하셨는데, 그 때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 말씀을 통해 마운드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지금은 더 강해졌다. 죄송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 LG에 와서 첫 해(2007년)엔 부진했다. 시즌 중반엔 안경현(당시 두산) 해설위원과 빈볼 시비도 있었는데.
"안경현 선배가 당시 두산의 주장이었고, 최고령 선배였다. 죄송한 마음이다. 하지만 야구를 하다 보면 타이밍이라는 게 있다. 그 때는 분위기 반전을 위해 내가 뭔가를 해야 할 타이밍이었고, 안경현 선배가 아닌 어떤 타자였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 밸런스가 무너지고 성적이 떨어졌다. 벌 받았나 보다. (웃음)"
- 옛날 이야기를 해보자. 프로에 오기 전엔 왼손 거포였다. 1997년 캐나다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4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빌 클라크 애틀랜타 스카우트가 투수로 영입을 했다. 팔꿈치 수술도 하고, 힘든 점이 많았을 텐데 투수를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는지.
"처음엔 외야수로 애틀랜타와 계약했다. 그러다 첫 캠프 때 투수로 전향했는데, 아쉬운 점은 없다. 후회 없이 던졌고, 팔꿈치 문제도 잘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타자에 대한 애착은 있다. 힘든 희망사항이겠지만 은퇴 전에 타자로도 몇 번 쯤은 나서보고 싶다."
- 타자도 욕심이 있나. 얼마 전엔 마무리 투수도 하고 싶다고 했는데.
"마무리 투수 생각은 예전부터 했다. 2008년 김재박 감독님과도 그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내 성격이 마무리에 맞다고 생각한다. 이상훈 선배를 보면서 야구를 시작했고, 그 포스를 갖고 싶어 이를 악물고 공을 던졌다. 승부욕이 있기 때문에, 선발진에 짜임새가 갖춰지고 내 구속이 시속 145㎞ 정도까지 올라오면 마무리 투수가 하고 싶다."
- 앞으로 LG에서 어떤 선수가 되고 싶나.
"고참도 신인도 아닌, LG 선수로서 반성을 많이 하고 있다. 팬들에게 너무 죄송해서 할 말도 없다. 0-4, 0-5로 지고 있어도 끝까지 팬들이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경기를 보실 수 있게 끈기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어린 선수들을 잘 독려하고, 솔선수범하겠다. 말은 그동안 많이 했으니 몸으로 보여드리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