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들이 폴란드 사람을 비하하는 폴락(polack)이라는 말을 쓴다. ‘멍청한 폴란드인’이란 뜻으로 의역되기도 하는데 한국인이 ‘조센징’이라는 말을 들을 때 분노하는 것처럼 폴란드인들도 싫어하는 단어다.
이런 비하어가 자리잡은 것은 '기창(기병창)으로 무장한 폴란드 기마대가 독일의 기갑사단에 무모한 돌격 공격을 감행했고 전멸했다'는 잘못된 사실이 널리 알려진게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이 루머는 여전히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1939년 8월 31일 독일은 폴란드 침공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일명 '통조림 작전'을 사용했다. 통조림 작전은 일본이 만주사변의 빌미로 사용한 '노구교 사건'과 거의 일맥상통한다. 독일군은 죄수 13명을 폴란드군 복장으로 갈아 입혀 폴란드 국경 근처에서 사살한다.
그리고 폴란드가 독일을 침공했다고 선전하며 이 사건을 핑계로 독일은 9월1일 폴란드에 선전포고 했다. 폴란드 정부는 개전 4일째인 9월4일 수도 바르샤바를 버리고 루마니아로 망명했고 9월 17일에는 소련까지 폴란드를 침공했다. 결국 9월27일 폴란드는 항복할 수 밖에 없었고 10월 5일 모든 전투는 끝났다. 독일과 소련은 부그강을 새로운 국경을 정했다. 패전한 폴란드 병사들은 영국으로 망명해 자유 폴란드 군단으로 독일에 항전했다.
이 한달간 폴란드의 자랑인 창기병(울란·Uhlan)연대 '포모르스케 기마대'(폴란드의 창기병 연대 명칭)는 독일군과 싸움을 벌였다. 당시 폴란드의 포모르스케 기마대는 2000여명이었다. 포모르스케 기마대는 유럽 전쟁사에 다수 출현해 승전을 이끌었을 정도로 자존심과 명성이 대단한 기마대다.
포모로스케 기마대가 독일 보병 부대에 대해 돌격한 것은 16차례 정도로 기록되고 있는데 대부분의 전투에서 성공적인 전과를 올렸다. 포모로스케 기마대는 자신들의 장점인 기동력을 이용한 기습작전으로 선전했는데 불시에 기습을 당한 독일군 보병부대는 큰 피해를 입었다.
'폴란드 기마대가 창을 들고 탱크에 대항했다'는 이야기는 16차례 돌격 중 한 곳에서 벌어진 일이다. 숲 속에서 휴식 중이던 독일 보병들에 기마대가 돌격을 감행했다. 이때 뒤늦게 독일 기갑사단이 나타나 협공(독일군의 작전이었는지 우연이었는지 알 수 없다)을 해왔다. 폴란드기마대는 선택의 여지없이 달려오는 적의 전차들과 일시에 맞닥뜨렸고 결국 전멸했다. 특히 기마대 중 탱크에 돌격전을 펼친 것은 사면초가에 빠진 폴란드 군이 소수의 희생을 통한 다수의 생존을 위한 작전중 하나라는 평가도 있다.
당시 폴란드 창기병들은 여전히 울란이라는 명칭을 쓰고는 있었지만 주무장은 라이플과 경포였다. 또 창을 든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는 전통을 중시여기는 병사들이 선택한 무기일 뿐이다. 또 이들은 대전차 화기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폴란드에는 총 170만명에 이르는 군사를 동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전격전이라는 새로운 전쟁 개념과 전차·폭격기로 무장한 독일에 당해낼 수 없었다. 그들은 아직 구식군대에서 신식군대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