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호(42) SBS ESPN 캐스터는 14년차 베테랑이다. 축구 중계만 2500경기 정도 했을 정도니 축구 보는 눈은 전문해설위원 못지 않다. K-리그 16개팀은 물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0개팀 주전 선수들을 얼굴만 보고도 구분할 수 있다.
조 캐스터는 올 시즌 '공중에는 심우연'이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주목을 받았다. 헤딩력이 뛰어난 전북 현대 수비수 심우연(196㎝)을 설명하는 단어다. 심우연은 전북 팬들로부터 '공중에는 심우연'이라는 다소 긴 별명을 얻었다. 승부조작이라는 암울한 분위기 속에 태어난 유쾌한 유행어다. 그는 "의도한 건 절대 아니다. 시청자들이 즐거워 했으면 다행이다"며 웃었다.
-'공중에는 심우연'이라는 단어를 만든 주인공이다.
"하하. 우연하게 나온 말이다. 팬들이 유행어라고 불러주시면 고마울 따름이다."
-어떻게 만들어진 단어인가.
"지난 10월 20일 열린 전북과 알 이티하드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원정 경기를 중계하다가 처음 말했다. 심우연이 후반 교체투입됐다. 알 이티하드가 세 차례 연속 크로스를 올렸는데 심우연이 머리로 다 걷어내더라.
'심우연 선수는 키가 커서 헤딩을 잘합니다'라고 말하기에는 화면이 너무 빨리 지나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공중에는 심우연'이라는 짧은 단어가 나왔다. 진짜 공중에 심우연만 보였으니까(웃음)."
-심우연의 공식 별명이 됐다. 직접 지어준 셈이 됐는데.
"유행을 시키려고 한 건 아닌데 좋은 별명이 돼서 다행이다. 그 뒤로 '공중에는 비디치'와 '공중에는 정성훈' 등을 써봤는데 욕만 먹었다. '왜 자꾸 남발하나'라는 내용의 글이 내 트위터에 올라오더라. 그때부터 자제하기 시작했다. '공중'이라는 단어는 심우연과 잘 맞는 것 같다.하하."
-심우연 선수와 만나봤나.
"만나지는 못했지만 전북 관계자가 '심우연 선수가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했다'고 하더라. 심우연 선수에게 연락을 해서 식사 한 번 대접하고 싶다. 조만간 만나자."
-다른 유행어도 있나.
"2년 전 중계 때 나온 장면이다. 크로스가 두 선수의 머리를 연속해서 맞고 골망을 흔들었다. 이 모습을 보고 '딩동댕'이라는 표현을 썼다. 크로스-헤딩-헤딩으로 이어지는 모습과 잘 맞아서다. 몇 번 써봤는데 아무도 따라하지 않더라. 완전히 묻혔다(웃음)."
-캐스터에게 유행어는 어떤 의미인가.
"유행어가 생기면 기분은 좋다. 그러나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캐스터는 해설자를 도와주는 입장이기 때문에 튀어서는 안 된다. 최대한 유행어는 자제하고 경기에 집중하도록 노력한다."
-축구 중계 경력만 14년이다. 그동안 몇 경기 정도 중계했나.
"회사 후배들 말에 따르면 축구만 2500경기 정도 중계를 했단다. 1년에 150경기~200경기 정도 중계를 한다. K-리그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이탈리아 세리에A·독일 분데스리가까지 세계 주요 리그는 다 중계를 해봤다."
-그만큼 축구에 대한 애착이 강할 것 같다.
"축구 외에도 격투기·배구·유도·육상 등 다양한 종목을 했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종목은 축구다. 중계할 때 가장 흥이 나는 종목이다."
-올 시즌 K-리그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캐스터 입장에서는 어떤 느낌인가.
"안타깝다. 승부조작 사건 이후 말을 더 조심하게 됐다. 경기 중에도 어쩔 수 없이 '승부조작'이라는 걸 짚어주고 넘어 가야하는 게 캐스터의 역할이다. 하지만 입에 담기 싫었던 게 사실이다."
-올 시즌 기억에 남는 중계는
"7월 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 서울과 상주 상무의 경기다. 상주 골키퍼들이 승부조작과 경고누적 등으로 다 빠졌다. 어쩔 수 없이 무명의 수비수 이윤의 선수가 골키퍼 장갑을 꼈다. 감동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아픈 부분을 찌를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이윤의 선수를 설명하려면 승부조작을 언급할 수밖에 없었다."
-중계하다 보면 응원하는 팀도 생기지 않나.
"그러면 큰일난다. 특별하게 선호하는 팀은 없다. 물론 좋아하는 선수는 있지만 노코멘트다. 항상 중립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중계하기 전에 특별한 버릇이 있나.
"선수처럼 움직인다. 경기 3시간 전에 미리 경기장에 온다. 그리고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 중계 도중 생리적 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3년 전에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중계 도중 배가 아파 큰일을 저지를 뻔한 경험이 있어 그 뒤로 조심한다. 경기장 도착 후 가장 먼저 하는 게 화장실 동선 파악이다(웃음)."
▶공중에는 심우연?
K-리그에서는 '공중에는 심우연'이라는 유행어가 생겼다. 조민호 SBS ESPN 캐스터가 중계 도중 무심코 뱉은 말이 인터넷 축구 사이트를 통해 퍼졌다. 전북 수비수 심우연은 "칭찬이라 쑥스럽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TV중계의 위력은 대단하다. 선수 한 명의 이미지와 별명을 바꿀 수 있다. 중계가 더 많아져야 K-리그 인기도 올라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