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봉조정신청 기한은 1월 10일까지다. 별 일 없이 지나간다면 '이대호 룰'의 영향 때문 아닐까.
프로야구 8개 구단은 지난해 세밑까지 주요 선수들과 연봉 재계약을 마무리짓지 못했다. 성적을 낸 스타급 선수와의 협상은 원래 새해를 넘기는 게 관례다. 하지만 올해 선수들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이번 오프시즌은 역대 최고로 꼽힐만큼 프리에이전트(FA) 시장이 활성화됐다. 2일 두산과 계약한 김동주를 비롯해 17명 FA 전원이 계약에 성공했다. 사상 최다다. 두산은 정재훈에게 중간계투요원에게 사상 첫 4년 계약(28억원)을 제시했고, 롯데와 4년 36억원에 계약한 정대현은 2004년 진필중(4년 30억원)의 역대 구원투수 최고액 기록을 8년 만에 깼다. 넥센도 이택근에게 시장 평가를 훨씬 뛰어넘는 4년 50억을 안겨줬고, 해외 복귀파로는 한화 김태균이 계약금 없이 연봉으로만 15억원을 올해 받는다.
기존 선수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여기에 프로야구 연봉 수준은 최근 5년 동안 제자리걸음이었다. 1999년 3757만원이던 평균 연봉은 2007년 8472만원으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2011년 평균 연봉은 8616만원으로 5년 사이 인상율이 1.7%에 불과했다. 2007년 현대 유니콘스 위기 뒤 구단들은 경영 긴축에 나섰고, 가장 가시적인 효과는 연봉 인상 억제에서 나타났다. 반면 최근 프로야구 호황으로 선수들의 '제몫찾기' 의식은 좀 더 강해졌다.
프로야구 선수는 구단의 보류권, 즉 독점계약권에 묶인다. 9년을 뛴 FA가 아니고서는 이 제약에서 자유롭기는 불가능하다. 제도적 장치가 없는 건 아니다. 입단 3년 이상 선수에게 주어지는 연봉조정신청권이다. 선수와 구단이 각자의 금액을 제시한 뒤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구성하는 조정위원회의 조정을 받는 제도다.
정상적이라면 올해같은 해에는 연봉조정신청이 많아지는 게 논리적이다. 그러나 연봉조정신청기한(1월 10일)을 일주일 앞두고도 이에 대한 언급을 하는 선수는 드물다. 연봉 협상을 앞두고 있는 한 선수는 "워낙 선수들에게 불리하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역대 연봉조정 결과는 19대1로 구단 승리였다.
여기에 지난해 1월 이대호(롯데)와의 연봉조정에서 KBO 조정위원회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 당시 조정위원회는 6억3000만원을 써낸 롯데 구단의 손을 들어주면서 "구단 고과를 우선했고, 타 구단 소속 선수의 연봉은 이번 뿐 아니라 앞으로도 고려하지 않는다"라고 발표했다.
조정 과정에서 구단의 지불 능력을 고려하는 건 타당하지만 기준을 소속 구단의 고과에 맞춘다는 건 '조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연봉 조정의 제 1기준이 '같은 리그에서 활약하는 비슷한 성적을 기록한 다른 선수와의 비교'다.
지난해 1월 이대호의 연봉조정은 KBO 입장에서도 골치아픈 문제였다. 한 조정위원은 "최종 투표 때까지 3대2로 이대호가 이길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의외로 3대2로 구단의 승리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후일담을 밝혔다. 조정위원회가 비난을 피하기 '새로운 기준'이 필요로 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래서 '소속 구단 고과를 우선한다'는 '이대호 룰'이 만들어졌고, 이는 가뜩이나 유명무실한 연봉조정제도를 아예 사문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