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완구와 문화콘텐트의 한류를 주도하고 있는 (주)손오공의 최신규 대표가 4일부터 칼럼 '최신규의 아이디어 창고'를 매주 연재합니다. 전세계 1조원 매출을 올린 팽이 '탑블레이드', 국산 애니메이션 '하얀마음 백구', 온라인 게임과 노래방을 결합한 '슈퍼스타K 온라인', 고급 한복 인형 '연지' 등 수많은 히트 상품을 기획·제작한 주인공입니다. 지난해 '멈추지 않는 팽이'를 출간했으며 샘물같은 아이디어로 완구 한류를 만들어가고 있는 최 대표의 노하우를 만나보시죠. <편집자주>편집자주>
높이 32㎝, 몸길이 50㎝의 걸어가는 용가리 완구가 개발됐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1996년 가을 무렵 심형래 감독이 만나자는 제의를 해왔다. 그 만남을 주선한 사람은 코미디언 김형곤씨었다. 심 감독은 용가리를 영화로 만들고 있다면서 내게 완구로 개발해보라고 제의했다. 머천다이징 권한을 손오공에 주는 대가로 4억원 투자를 요청했다.
투자를 결정한 나는 영화 개봉(1999년)에 맞춰 내놓을 용가리 완구의 성격을 놓고 고민했다. 평범한 용가리 완구는 용납할 수 없었다. 결론은 완구 안에 기계 모터가 들어가 움직이는 일명, '메카닉 용가리'였다. 몸통은 초록색이며, '크하학' 소리를 지르며 걸어가는 살아있는 용가리!
당시 국내 기술로 걸어가는 완구를 만들기 어려웠다. 용가리 관절에 붙일 모터를 연구해야 했다. 그 다음은 용가리가 움직일 때 터지지 않는 피부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말랑한 재료를 금형(완구를 찍어내는 틀)에서 떼어내면 찢어지고, 표피로 씌워 놓으면 자연스럽게 찌그러졌다. 재료 혼합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탄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적합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 1년에 걸쳐 일본을 수 차례 왔다갔다 했다.
일본의 한 기업은 재료의 비밀은 가르쳐주지 않은 채 "금형을 가져오면 한 번 찍어보겠다"고 했다. 금형을 받은 그들은 용가리 완구 샘플을 보내왔다. 나는 샘플을 보자마자 그 재료가 무엇이었는지 금방 알았다. 내가 모자랐던 2%! 고무와 플라스틱을 혼합한 탄성있는 재료였던 것이다. 일본에서 금형을 국내로 다시 가져와 재료배합을 하여 완벽한 용가리의 피부를 만들어냈다. 오히려 일본 샘플보다도 더 나았다. 개발에 착수한 지 2년 만의 성과였다.
용가리 완구는 근사하게 나왔지만 영화는 내 기대와 전혀 달랐다. 나는 심 감독의 어린이 영화 '영구와 땡칠이' '티라노의 발톱'을 모델 삼아 여기에 투자한 것이다. 또한 '용가리'는 한국의 정서와는 달리 외국인들이 등장할 뿐 아니라 타깃 연령층도 높았다. 어린이에게 흥행이 되는 영화여야 하는데…. 연구·개발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용가리 완구는 의외로 팔리지 않았다. 하나에 3만원이나 하는 고급 용가리 완구를 어른들이 살 리는 없지 않은가!
한때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영구'는 알만큼 어린이들에게 인지도가 높았던 심형래 감독이 '티라노의 발톱'처럼 어린이 영화를 전문으로 제작했다면 영구아트는 아마도 세계적인 일본의 어린이 영화사 도에이처럼 되었을 것이다. '용가리' '디 워' '갓파더' 등은 심형래에겐 맞지 않는 옷이 아닐까…. 나 역시 심 감독 영화에 투자해 손실을 보았지만 미워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 SF영화에서 심 감독만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 노하우를 다시 살려 심 감독이 '제2의 용가리'를 만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