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현은 2004년 여름 영국으로 건너갔다. 프리미어리그 진출이라는 목표를 향해 일단 하위 리그인 챔피언십리그로 뛰어들었다. 울버햄프턴을 우승시키고 당당하게 팀과 함께 프리미어리그로 올라가겠다는 꿈을 품었다. 팀의 1부리그 승격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설기현은 2006 독일 월드컵을 마친 후 프리미어리그에 승격한 레딩에 발탁됐다. 챔피언십리그에서 맞대결을 하며 설기현을 눈여겨봤던 스티브 코펠 감독이 전격 스카우트한 것이다. 설기현은 레딩과 풀럼으로 팀을 옮기며 세계 최고 무대를 누볐다.
-영국 축구에서 뭘 배웠나.
“내가 몸싸움에서 밀린 적이 없는데 잉글랜드에서는 달랐다. 피지컬이 너무도 강했다.”
-영국 음식 맛이 없기로 유명한데.
“정말 그렇다. 정말 먹을 게 없다. 피시앤 칩스도 맛이 없다. 그런데 영국 선수들은 맛없는 것도 참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반대로 영국 선수도 맛있는 것을 먹어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울버햄프턴 시절에 스페인으로 전지훈련을 갔다. 정말 맛있는 훈제 닭고기 요리가 있었다. 근데 영국 동료들이 저희끼리 ‘저 닭고기 더럽게 맛없으니까 조심하라’고 수군대더라. 그걸 보고 혼자서 엄청 웃었다.”
-영국에서 먹었던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건 없나.
“버터 연어 구이다. 벨기에 때 날 챙겨주던 한국 분이 해주던 요리다. 기억을 더듬어서 내가 만들어 먹었다. 버터를 듬뿍 넣어 프라이팬을 달군 후 연어를 익히고, 벨기에 사람들이 잘 먹는 야채를 넣어 먹는 요리다. 야채가 쓴 맛이 나는데 연어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경기 전날 해먹고 나갔다.”
-경기 하루 전날에는 단백질과 기름기를 줄이고 탄수화물 로딩을 해야하지 않나.
“무슨 소리냐. 영국 선수들은 경기 당일에도 고기 먹고 잘만 뛰더라.”
-요즘 새로 알게 된 음식은 없나.
“과메기다. 2010년에 포항에서 시즌 마치고 선수들끼리 서울에서 회식을 했다. 팀 후배가 포항에서 잔뜩 싸가지고 올라왔다. 홍어처럼 삭힌 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과 달랐다. 강릉에서도 꽁치는 많이 나는데 과메기는 한 번도 못들어봤다. 같은 한국인데도 강릉과 포항 부산은 생선을 먹는데도 차이가 나고 이름도 다르다.
-뭐가 다른가.
“부산은 조기와 갈치, 이런 거 많이 먹는 것 같다. 강릉에서는 새치하고, 꽁치, 고등어를 많이 먹었다. 임연수를 강릉에서는 새치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너무 많이 먹어서 정말 쳐다보기도 싫었다. 엄마가 새치를 꾸들꾸들 말려서 고춧가루에 묻혀서 주곤했다. 그게 그렇게 맛있는 음식인지 요즘 새삼 느끼고 있다.”
-앞으로는 축구 인생은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
“울산에서 어린 후배들과 힘을 합쳐서 K-리그에서 준우승까지 하는 과정이 너무 즐거웠다. 이제는 내가 잘하는 것도 좋지만 후배, 동료와 함께 좋은 팀을 만들어나가는 게 재밌다. 김호곤 감독께서 나와 주장 곽태휘에게 많은 것을 맡겨 주셔서 더 책임감을 느꼈다. 선수 생활을 좀 더 한 뒤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것을 후배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싶다.”
설기현의 축구 이력은 그가 먹었던 음식의 이력이기도 하다. 강원도에서 생선과 싱싱한 채소를 먹었던 소년은 유럽 본토의 음식과 영국의 맛없지만 터프한 요리, 그리고 잠시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의 양고기까지 먹어보고 다시 K-리그로 돌아왔다. 설기현은 K-리그와 한국 축구에서 자신이 어떤 맛을 내는 축구를 선보일 지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