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시즌에 앞서 ESPN은 NBA 선수 랭킹 500을 발표했다. 코비 브라이언트(LA 레이커스)는 거기서 7위. 자신을 향한 평가절하 발언이나 기분 나쁜 소리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기억한다는 그에게 이 랭킹 발표가 적지않게 거슬렸던 모양이다.
코비는 지난 10일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피닉스 선스전에서 온몸 시위를 벌였다. 손목부상에도 NBA 시즌 최다인 48점을 폭격했다. 레이커스도 99-83으로 압승을 거뒀다. 11일 유타 재즈와 원정경기서는 40점을 쓸어담아 팀의 90-87 연장승을 이끌었다.
10일 경기에 선수 랭킹 외에도 동기유발이 될만한 요인이 또 있었다. 바로 2000년대 중반 그의 '넘버 1' 라이벌이었던 선스 포인트가드 스티브 내쉬다.
당시 코비의 앞길을 매번 막았던 게 바로 내쉬가 이끈 선스였다. 2006년에는 서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3승1패로 앞서다 내리 3경기를 지며 고배를 마셨다. 2007년에도 첫판서 선스에 고개를 숙였다.
코비가 소속팀을 향해 "제발 나를 다른 팀으로 보내달라"라며 트레이드 타령을 하게 만들었던 팀이 바로 선스였다.
또 코비는 한 경기 81득점을 올리는 등 마이클 조던 이후 처음으로 한 시즌 평균 35득점 이상 플레이어가 됐음에도 기자들 사이에 이미지가 좋지 않아 2년 연속 MVP를 스티브 내쉬에게 양보해야 했다. 그래서 코비는 지금도 선스만 만나면 혈압이 오른다. 이날 전까지 그의 최다 득점 게임은 지난 2009년 3월 1일 올렸던 49점이다. 당시 경기도 역시 선스전이다.
코비는 기자회견장에서 선스를 향한 증오심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난 그들을 싫어한다. 예전에 그들에게 줄곧 볼기짝을 맞았다. 절대 잊지 못한다(I will never forget that)"라고 말했다. 한 기자가 '이제 당시 멤버들 중 감독 선수도 다 바뀌고 내쉬 하나 남았는데도 앙심이 남았냐'고 묻자 "상관없다. 그때 당했던 걸 평생 용서 못한다"고 코비다운 대답을 했다.
코비는 지난 2007년 이후 5년 만이자 통산 세 번째 득점왕도 가능해 보인다. 12일 현재 평균 30.3점(5.9리바운드 5.6어시스트)으로 득점 1위로 등극했다.
코비의 승부욕(competitiveness)이 어느 정도인지는 필 잭슨 전 레이커스 감독의 회고록 '마지막 시즌(The Last Season)'에 잘 나와있다. 그는 코비가 워낙 다혈질이라 어떤 플레이에 대해 지적하기도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책 본문에 그는 이렇게 썼다. '코비 플레이가 마음에 안 들어 그런 식으로 패스하지 말라고 그랬다. 하지만 코비는 "그럼 저 개자식들에게 공격작전을 어떻게 펄칠 것인지부터 가르쳐요(Well you better teach those motherf…how to run the offense)!" 라고 받아쳤다.
물론 당시에 비해 성격이 많이 차분해진 코비다. 최근 그를 두고 '한물갔다'는 평가가 쏟아져 나왔는데 그의 득점본능에 다시 불을 지핀 모양새다. 최근 활화산처럼 터지고 있는 득점력에 그가 조던처럼 30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연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180도 달라진 전망도 나오고 있다.
스카티 피펜도 11일 한 인터뷰에서 코비가 조던과 매우 흡사함을 인정했다. "나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며 "마이클의 카리스마부터 걷는 모습. 말하는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농구 스타일이 닮아도 너무 닮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