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엔 피죤’이란 광고 카피로 30여년 간 섬유유연제 업계 1위로 군림해 온 피죤이 정상자리에서 밀려났다. 이윤재 피죤 회장이 청부폭행 사건으로 경영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LG생활건강이 1위를 차지했으며 후발주자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피죤이 다시 재기할 수 있을지, 세재업계가 어떻게 재편될지 주목된다.
▶피죤, LG생활건강에 밀려
29일 시장조사업체 닐슨에 따르면 LG생활건강의 섬유유연제(샤프란)가 작년 시장점유율 43.3%로 1위를 차지했다. 피죤은 전년 대비 15.4% 포인트 하락한 28.6%를 기록, 2위로 내려앉았다. 제품이 출시 이후 3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3위인 옥시(쉐리)도 18.3%로 피죤과의 격차를 10% 포인트로 좁혔다. 섬유유연제 업계에서 엄청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
피죤은 액체세제 시장에서도 흔들리고 있다. 부동의 1위이던 피죤의 '액츠'가 지난해 7월 이 회장 악재가 처음 알려진 이후 시장점유율이 추락하기 시작해 4~5위권으로 밀려났으며 경쟁사인 LG생활건강과 애경이 1위 자리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회장의 청부폭행이 추락 불러
피죤의 추락 원인으로는 이윤재 피죤 회장의 청부 폭행 사건이 자리하고 있다. 이 회장은 조직폭력배에게 돈을 주기로 하고 언론에 제보해 회사에 대한 비난성 기사가 나오도록 한 이은욱 전 피죤 사장을 폭행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구속됐다. 더구나 이 회장은 폭력배에게 도피자금을 건넨 혐의도 받았다. 그는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피죤측은 형량이 너무 과도하다며 2심을 청구했지만 지난 27일 재판부는 '이 회장의 나이를 고려하더라도 1심의 형이 가벼운 편'이라며 항소를 기각했다.
한 회사의 오너가 청부폭행으로 실형을 받은 것은 이윤재 회장이 처음이다. 2007년 김승연 한화 회장은 둘째 아들과 시비가 붙은 유흥주점 종업원을 조직폭력배를 시켜 폭행한 사건과 관련해 집행유예를 받았다.
피죤은 이 회장의 사건으로 기업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었다. 또 오너가 경영에 집중하지 못하면서 경쟁사의 추격을 손 놓고 지켜봐야 했다.
▶회장 딸 재건 가능할까
이 회장이 10월 징역형을 받으면서 올해 피죤의 경영 공백이 불가피하다. 피죤은 2007년 이후 영입된 전문경영인 4명이 대표이사로 평균 4개월 남짓 회사에 머물다 떠나 창업주 이 회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현재 이 회장의 빈 자리는 딸인 이주연(48) 부회장이 대표이사가 돼 채우고 있다. 따라서 이 부회장이 추락한 피죤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피죤측은 "이주연 부회장이 피죤의 마케팅 분야에 10년간 일해와 내부사정을 잘 알고 있어 현 상황에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는 피죤이 정상자리를 탈환하는데 꽤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세탁이나 생활용품 세제의 경우 정상자리에서 한 번 밀려나면 탈환하기가 어렵다는 점, 제품 결함이 아닌 기업 이미지가 나빠진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마음이 돌아서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