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39·한화)는 14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와의 평가전에서 2⅔이닝 동안 4실점한 뒤 "SK 타자들의 선구안이 좋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SK 타자들이 높은 '스트라이크'에 방망이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 공이 '볼'이 돼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승부를 했다"고 경기가 어렵게 풀린 이유를 설명했다.
이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높은 스트라이크도 스트라이크다. 그런데 그 스트라이크가 볼이 됐다고 하니 얼핏 심판 판정에 불만을 제기한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박찬호는 먼저 "SK 타자들의 선구안이 좋았다(내 공이 볼이었다)"며 심판 판정을 수긍하는 발언을 했다. 스트라이크인데 볼이다? 이 모순된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볼 하나만큼 높았다
이날 박찬호의 공이 전반적으로 높았던 건 분명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민호 주심 뿐 아니라 한화·SK 전력분석원들이 모두 인정했다. 이민호 심판은 경기를 마치고 "박찬호의 직구가 대체적으로 높게 들어왔다"고 했다. 스트라이크존 상한선에 대해서는 "평소처럼 타자의 팔꿈치 밑부분을 기준으로 했다"고 밝혔다. 야구규칙에 따르면 한국 스트라이크존 기준은 '유니폼의 어깨 윗부분과 바지 윗부분 중간의 수평선을 상한선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이민호 심판의 상한선 기준과 일치한다. SK 전력분석팀의 자료에 따르면 박찬호는 이날 직구 28개 중 17개가 높게 들어왔다. 스트라이크존을 상중하로 나눴을 때 '상' 또는 그 위로 들어온 비율이 60%가 넘는다. 그중 9개는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난 '높은 볼'이었다.
문제는 이날의 '높은 공'이 단순 제구 문제가 아니라 스트라이크존 혼란 때문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박찬호는 아직 국내 스트라이크존에 익숙하지 않다. 한국과는 다른 미국과 일본의 스트라이크존에 적응해 18년 동안 공을 던져왔다.
이민호 심판위원은 "박찬호의 공이 크게 높았던 건 아니다. 거의 다 공 하나 차이로 빠졌다"고 했다. 한국에 비해 상하가 긴 일본 스트라이크존 상한선에 따르면 스트라이크가 될 수도 있었던 공들이었다는 의미다. 박찬호는 지난해 일본 스트라이크존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이런 점들 때문에 박찬호의 "높은 스트라이크를 던졌는데 볼이 됐다"는 발언을 흘려들을 수 없는 것이다.
추위로 인한 일시적 제구 문제
김준기 한화 전력분석팀 차장은 "박찬호가 스프링캠프에서는 전혀 스트라이크존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때는 낮게 잘 던졌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김 차장은 박찬호가 추위 때문에 공을 높게 던졌다고 설명했다. 이날 문학구장의 한낮 기온은 섭씨 5.4도였다. 바람도 거세게 불어 체감온도는 1.5도까지 내려갔다.
김 차장은 "날씨가 추워 박찬호의 손에서 공이 제대로 '긁히지' 않고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날씨가 추워 손이 건조해지면 릴리스하는 순간 손가락으로 공을 잡아채지 못하고 살짝 놓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공이 높게 들어간다. 박찬호와 배터리를 이뤘던 포수 신경현 역시 "날씨가 추워 스프링캠프 때보다 (박)찬호 형의 투구 밸런스가 불안정했다"고 '추위로 인한 일시적 제구 문제'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김 차장과 신경현의 말대로 추위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면 박찬호의 제구 문제는 날씨가 따뜻해지면 해결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