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목동구장에서 만난 김시진(54) 넥센 감독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넥센이 요즘 좋아졌다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하자 "누가 그래요? 나보다 우리 팀을 더 잘 아는 사람이 많네"라고 한 뒤 "훈련은 충분히 했다. 결과물이 좋아야 하는데 그게 문제"라고 말했다. 몇 마디를 이어간 그는 "담배 한 대 피우겠다"며 불을 붙였다.
넥센은 올해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구단 중 하나다. 메이저리그에서 54승을 거둔 잠수함 투수 김병현과 1년 16억원에 계약했고, 2009시즌 뒤 LG로 떠나보냈던 프리에이전트(FA) 야수 이택근을 4년 최대 50억원의 대박을 안기며 복귀시키는 데 성공했다. '가난하다'는 이미지를 씻고 '큰 손'으로 떠오른 넥센은 무시하지 못할 전력으로 평가받으며 올 시즌 반란의 주역으로 꼽히고 있다.
김시진 감독은 "김병현과 이택근이 각각 투·타의 중심을 잡아줄 것"이라며 "특히 이택근이 중견수를 맡으면서 외야 포지션이 유동적으로 바뀌었다. 팔꿈치 수술을 받은 유한준이 돌아오는 5월쯤엔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 동기부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둘의 가세로 팀을 바뀌었다'는 지나친 낙관은 경계했다.
그는 "기존 선수들이 제자리를 맴돌면 두 명 영입은 큰 효과가 없다. 야구라는 종목은 선수 두 명 들어온다고 팀 전력이 확 좋아지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넥센은 공격과 수비 모두 다른 7개 구단에 비해 열세에 놓여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해 넥센의 팀 평균자책점은 7위(4.36), 팀 타율은 팀 순위와 같은 8위(0.245)에 머물렀다. 김시진 감독은 오재일·조중근을 꼽으며 "그동안 기회는 많이 줬다. 올해는 중심 타자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투수 중엔 왼손 강윤구를 기대주로 꼽았다.
김시진 감독에게 "선수들 눈에서 독기가 좀 보이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내가 그래야겠다"고 했다. "강팀으로 가는 지름길은 새는 점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홈런과 안타는 맞을 수 있다. 볼넷을 줄 수도 있다. 문제는 투수 땅볼을 병살 처리하지 못하고 중계 플레이를 허술하게 하는 본헤드플레이다. 그러면 꼭 일이 터진다. 방망이가 강한 편이 아니어서 우리가 1점 더 내기는 힘들다. 누가 봐도 아니다 싶은 플레이를 하는 선수에겐 책임을 물을 것이다. 직업을 망각한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 3년을 기다려주지 않았는가."
2009년부터 넥센을 지휘한 김시진 감독은 세 시즌 동안 패배의 아픔만 곱씹었다. 첫 해 6위였던 순위는 2010년 7위, 2011년 최하위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지난해까지는 장원삼·황재균·고원준·마일영 등 주력 선수들이 하나둘씩 팀을 떠나 없는 살림에 선전한다는 동정표가 많았다. 하지만 올해는 스타 선수 2명이 들어오면서 그동안 주어졌던 면죄부도 사라졌다. 같은 하위권으로 분류된 LG 못지 않게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하다. 김시진 감독은 올 시즌을 "2013년 우승을 위한 징검다리"로 못박은 상태다.
넥센은 21일 KIA를 10-4로 이기고 2경기 연속 영봉패 뒤 시범경기 첫 승을 거뒀다. 김시진 감독은 경기 뒤 "전체적으로 괜찮았는데 단 하나의 티가 김민우의 4회초 실책이다. 그 실책이 나와 4-3까지 쫓겼고 한 방 더 맞았으면 뒤집어졌다. 기본기를 망각하면 안된다. 방망이가 늘 오늘처럼 터질 순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스프링캠프에서 한 점 덜 주고 한 점 더 뽑기 훈련을 한 게 아깝다. 정신 차려야 한다. 다들 넥센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김시진 감독은 "이런 거만 제대로 된다면 바람을 일으킬 자신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