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제목에서 눈길을 확 끄는 영화는 둘 중에 하나겠죠? 제목만큼 강렬하거나, 제목에도 못 미치거나.
이 영화는 우선 '시체'라는 제목이 셉니다. 아울러 포스터에서 류승범이 들것에 누워있는 모습, 김옥빈이 머리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포즈가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서로 다른 목적으로 시체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의 쟁탈전을 그리고 있습니다. 친형제처럼 지내던 회사 동료 진수(정인기)와 현철(이범수)은 회사 사장이 거액의 기밀 칩을 자신의 팔뚝에 이식해 불법적으로 빼돌리려는 음모에 맞서 싸우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진수가 식물인간처럼 되어 입원하고 현철은 폭압적인 권력 앞에 포기하게 되죠. 그런데 이 와중에 사장은 또 심복같은 부하의 배신으로 독살됩니다.
이제 부하들이 사장의 몸속에 있는 칩만 회수하면 완전범죄가 이뤄지게 되는 거죠. 그러나 여기서 진수의 딸 동화(김옥빈)와 현철이 의기투합합니다. 병상의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회장의 시체를 훔쳐서라도 몸값을 받아내겠다는 위험한 작전에 들어가는 겁니다. 하지만 일이 계획대로 풀릴 리가 없고 엔딩까지 류승범·유다인·고창석·정만식 등 수많은 '변수'들이 발생합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스릴과 코미디로 버무리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잘 빠진 범죄사기극이 나올 뻔 했습니다. 그러나 좀 싱겁습니다.
시체를 훔친다는 소재는 얼핏 시선을 끄는데요. 여기에 어떻게 리얼리티를 입힐 것이냐는 다른 문제 같아 보입니다. 초반 10분간은 쫀쫀하고 절박하던 스토리가 류승범이 시체로 등장하면서 허물어집니다. 마치 '장르의 변태'가 일어나듯 긴박한 스릴러는 좌충우돌 코미디로 탈바꿈합니다. 뭐, 코미디라도 좋습니다. 그렇다면 재미있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웃음의 수준은 몸개그와 황당함을 넘지 못합니다. 뒤바뀐 시체 류승범은 아예 작정을 하고 몸개그를 펼칩니다. 특유의 입담까지 더해 강물에 투신하고 마취제에 취해서 휘청거리는 코미디를 선보입니다. 영화 '만남의 광장'(07)에 등장해 배꼽을 잡게했던 길잃은 선생님처럼 '원초적 본능'식 코미디를 난사합니다.
사채업자 고창석과 어수룩한 국정원 요원 유다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창석은 폭탄머리와 단발머리 가발로 코믹 코스프레를 하고, 유다인은 '아마추어' 현철·동화 일행에게 납치돼 한다는 말이 겨우 "저 실은 국정원 요원이에요"같은 어이없는 대사인 거죠.
이범수가 드라마에서는 '불패신화'인데 스크린에서는 기복이 심했던 게 마음에 걸립니다. 김옥빈이 왜 두통을 참아가며 머리를 빨갛게 물들여야 했는지도 사실 좀 의문입니다.
기자시사회에서 몇몇 분들은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좀 젊으신 분들이 많더군요. 그냥 류승범의 능청스런 몸개그가 질리지 않거나 시체를 훔치는 것쯤은 이제 국내서도 이해 가능한 유머 코드라는 걸 인정한다면 오케이입니다. 그러나 이걸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싱거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