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의 더그아웃. 넓다면 넓지만 장정 수십 명이 들어가기엔 좁은 장소다. 여기서 때아닌 숨바꼭질이 벌어졌다.
박찬호(39·한화)가 입단한 후 한화 더그아웃이 그렇다. 숨고 숨기고 또 찾아다닌다. 로테이션이 정해지지 않고 선발 예고제도 하지 않는 시범경기에선 박찬호의 등판 일정이 취재진의 최대 관심사다. 반면 박찬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것을 염려하는 한대화 한화 감독과 프런트는 그의 등판 일정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고 있다. 박찬호도, 코치들도 함구 중이다.
한화는 28일 인천에서 열린 SK와의 시범경기에서 배스를 선발로 내보냈다. 남은 네 차례 시범경기에서 선발 등판할 예정인 투수들은 류현진(25) 안승민(21) 양훈(26) 그리고 박찬호다. 문제는 순서다. 취재진의 질문에 한대화 감독은 "비밀이지"라고 웃을 뿐이다. 복잡한 퍼즐 맞추기 같다.
바로 그때 더그아웃 감독석 뒤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려 안승민이 나타났다. 지난 25일 청주 삼성전에 선발 등판했던 그에게 "한 번 더 던지는가"라고 묻자 안승민은 "네, 일요일(4월1일 광주 KIA전)에 나옵니다"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반사적인 대답으로 팀 내 '기밀'을 말한 것이다. 한대화 감독은 허허 웃으며 "이 녀석, 말하면 어떡하냐"라고 퉁을 줬다.
일단 하나는 풀렸다. 그러자 한대화 감독이 힌트를 줬다. "그래도 박찬호가 왔는데 서울구경 한 번 시켜줘야지?" 29·30일 이틀간 잠실에서 열리는 LG와의 시범경기를 두고 한 말이다.
양훈은 29일 등판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박찬호의 등판은 30일 LG전이 될 확률이 크다. 취재진은 각종 정보를 모으고 추리까지 한다. 반면 감독과 코치는 말조심을 한다. 메이저리그 124승 투수 박찬호는 이렇게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박찬호라는 빅 이슈를 잘 이용하고, 부작용을 막는 것이 스태프와 프런트의 일이다. 박찬호가 잠실 경기에 투입되는 건 일종의 팬 서비스다. 그러나 부담을 최소화할 필요도 있다. 30일은 원래 넥센 김병현(33)이 사직 롯데전에 첫 등판할 예정(29일 롯데전으로 변경)이었고, 일본에서는 오릭스 이대호(30)가 정규시즌 개막전(소프트뱅크전)을 치른다. 한대화 감독은 "야구 팬들의 관심이 분산되면 박찬호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