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멘탈 게임이다. 2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 미라지 미션힐스 골프장에서 열린 L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총상금 200만달러) 최종일은 그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리더보드의 맨 윗자리는 지옥으로 추락하는 블랙홀이었다.
4라운드 중반까지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유선영(26·정관장)이 최후의 승자가 됐다. 연장전 끝에 한국 선수로서는 13번째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유선영은 대회 전통에 따라 18번 홀 그린 옆 호수인 '포피 폰드(Poppy's pond)'에 캐디와 함께 몸을 던져 우승 세리머니를 했다. 2004년 박지은에 이어 8년 만에 두 번째로 한국인 '호수의 여인'으로 탄생했다.
◇반전1: 카린 쇼딘의 추락
6언더파 공동 4위로 출발한 유선영은 공동선두였던 청야니(23·대만)와 카린 쇼딘(29·스웨덴)에게 3타나 뒤져 있었다. 카린 쇼딘은 2번 홀(파5)에서 이글을 기록하며 2타를 줄이며 단숨에 11언더파 선두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이후 보기를 5개나 기록하며 자멸했다. 7언더파 공동 4위로 경기를 마쳤다.
◇반전2: 서희경의 약진과 몰락
서희경(26·하이트진로)은 초반부터 약진을 거듭했다. 12홀까지 버디만 5개를 낚으며 파죽지세로 리더보드 맨 윗자리를 차지했다. 서희경의 페이스를 누구도 막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한 홀의 한 샷이 경기 흐름을 망치고 말았다. 15번홀(파4)의 티샷 실수가 서희경을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클럽 페이스를 빗맞은 공은 페어웨이 오른쪽 러프로 떨어졌고 거리도 짧았다. 서희경은 399야드의 이 홀에서 두 번째 샷으로 하이브리드 클럽을 잡았다. 너무 긴 클럽이었다. 클럽을 떠난 공은 그린 뒤 벙커로 떨어졌고 3온 2퍼트로 보기를 기록했다. 이후 서희경은 18홀까지 4개홀 연속 보기 행진을 했다. 스코어보드를 제출할 때 서희경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반전3: 18번홀 30cm 퍼팅에 운 김인경
서희경이 무너지기 시작한 4라운드 막판, 김인경은 반대로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17번홀에서는 5m짜리 버디 퍼팅을 기적적으로 홀로 밀어넣으며 10언더파로 당당히 단독 선두로 뛰어올랐다. 18번홀에서도 그린까지 무난하게 공을 올렸다. 하지만 주말 골퍼도 어렵지 않게 넣을 수 있는 30cm 퍼팅을 놓쳤다. 한뼘 반 정도 되는 거리다. 18번홀 보기로 김인경은 유선영과 연장 승부를 펼치게 됐다.
◇반전4: 유선영 마지막에 웃다
4라운드에서 유선영이 리더보드에 오른 것은 딱 1홀 뿐이다. 18번홀(파5·485야드)이다. 그것도 자신이 잘해서가 아니라 김인경의 실수로 공동 1위가 됐다. 마음을 비우고 임한 연장전에서 승자는 유선영이었다. 유선영은 연장 첫 홀인 18번홀에서 세 번째 샷을 핀 4.5m에 붙인 뒤 천금같은 버디 퍼트를 그대로 성공시켜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자 통산 2승을 거뒀다.